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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Oct 30. 2022

한가을의 매미 소리

단풍 틈으로 매미 소리가 들렸다. 여름 한 철 다녀왔다 떠나는 매미일 텐데, 이따금 소슬바람이 불어 추위마저 느껴지는 한가을인데도, 어디선가 철 지난 소리가 울렸다. 계절상 쉬이 듣기 드문 소리였으니 그곳으로 자연히 귀가 쏠렸다. 귀뚜라미 소리가 만연한 가을 거리에서, 혼자서만 다른 주파수를 내는 매미 소리가 유난스러웠다. 덕분에 울음소리가 공명이라도 한 건지 한 마리여도 널리 퍼졌다.


빠른 연생 동기가 있었다. 과학고를 조기 졸업해서 나보다 두 살 어린 동기였다. 같은 날 입학식을 치렀는데, 둘이 있자면 어쩌다 내가 삼수까지 한 처지가 됐다. 사회적으로는 같은 시간이 흘렀는데, 내가 군대를 제대했던 나이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에 입사했단 소식을 들었다. 뒤늦은 매미와 같이 더위가 시작되기도 전에 일찍이 나는 매미도 있더니, 시간이 참 빠른 친구였다.


평범한 집단에서 평범하게 지내온 터라 늘 평범했다. 평균만 해오던 내가 그 속에서 택할 수 있던 방법은 하나였다. 속도를 되려 줄이는 일이다. 속도를 줄여 무리에서 이탈해 보니 확실히 비범해질 순 있었다. 선두 마라토너가 주목받는 만큼 무리에 벗어난 꼴찌 주자 또한 눈에 잘 띄는 것처럼. 통계 그래프 속 평균에서 유의미하게 벗어난 수치를 '아웃라이어'라 한다. 길을 트니 남들에서 벗어난 아웃라이어가 될 수 있었다. 앞쪽이 아닌 뒤편의 아웃라이어로서 말이다.


어느 쪽이라도 평균에서 멀리 떨어지면 눈에 띄기 마련이다. 한가을에 나온 매미가 그랬듯이. 여름에 매미 무리가 온 사위에서 섞여 내는 소리는 귀를 따갑게 한다. 그 소리를 피하려 이어폰을 꽂곤 했으니까 썩 유쾌한 소리라고 할 순 없었다. 그렇지만 무리에서 벗어난 매미 한 마리가 뒤늦게 내던 소리는 가쁘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에 족했다. 주류를 차지하던 귀뚜라미 소리를 뚫고 나온 한 가닥의 개성이었다.


저만치 걸어왔는데도 여전히 들려오던 매미 소리였다. 남들 따라가지 않으면 불안한 건 사실이다. 무리를 이룬 덕에 약한 몸으로도 여기까지 생존해온 사람이라서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왕 늦은 거 굳이 그 길로 계속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남들 따라 선택하며 내가 지닌 소리마저 지울 필요는 없으니까. 한동안 매미 소리가 남기던 여음을 들으니, 왠지 모를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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