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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Oct 30. 2022

바깥은 압력

과학과 에세이

-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아파트는 평당 300킬로 하중을 견디게 설계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학교나 강단은 하중을 훨씬 높게 설계하고, 한 층이라도 푸드코트는 사람들 앉는 데랑 무거운 주방기구 놓는 데랑 하중을 달리 설계해야 되고, 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세게.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극 중 주인공 아저씨는 건축구조기술사다. 건물의 외력과 내력을 계산하는 일을 하는 사람. 건물은 하중을 버틴다. 사람도 무게를 견딘다. 뭔진 몰라도 머리가 지끈한 무게감을 우린 매일 같이 버틴다. 어디 가서 힘들다고 호소해도 그냥 버티라고 한다. 뭘 버티라는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버티란다. 다들 그러는 거란다. 그걸 매일 해내면 일주일이 되고, 4주가 모여 한 달이 된다. 그렇게 몇 달을 차곡차곡 모아 일 년을 버티란다. 그게 사는 거란다.


짓누르는 그 무게는 도대체 뭐였을까. 아무도 안 알려주니 고민해 본다. 아, 사실 아무도 모르니까 못 알려줬겠다. 나를 짓누르는 외력은 나에게만 느껴지는 건데, 그건 알려줄 방도가 없다. 외력의 형태와 무게, 그 모든 건 내가 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매장에서 이 옷 저 옷을 골라 입어보는 것마냥이었다. 남들처럼 살아야 하고 남들만큼은 해내야 한다는 이런저런 외압을, 뭔지도 모른 채로 전신거울 앞에 서서 내게 대보고 있었다. 피곤에 절어 졸음에 빠지듯 눈치 차릴 겨를도 없이, 스르륵 내가 정의하고 있었다.


안전제일. 공사장에 가면 제일 처음 보이는 문구는 안전이다. 건물을 지을 때 예쁘게 짓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건 안전이다. 외면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내면이 허술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 건축가가 외력을 흠뻑 받아들이며 심미성을 설계할 때 구조기술사는 악착같이 외력을 받아낼 내력을 계산한다. 아슬아슬 화려하게 지어진 건물에 감탄하며 들어왔지만 이내 문득 생각한다. 이 건물, 정말 안전한 거 맞겠지 라며.


나의 내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작은 고난과 역경에도 쉽게 흔들리는 장면을 보면 생각하게 된다. 진정한 내력은 무엇이었을까. 뭘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까. 뭔지도 모를 내력을 기르려고 하기 전에, 나를 짓누르던 외력부터 우선 파악해야 하지 않았나 하고.


다들 평생을 뭘 가져보겠다고 고생하며 산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아등바등 산다. 그러면서 손에 쥐는 와중엔 뭘 갖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서 원하는 걸 갖는다고 해도, 나를 안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이리 치이고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저리 치인다. 금이 가고 못 견디고 무너진다.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 나를 지탱하는 기둥인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진정한 내 내력이 아닌 것을 느껴간다. 정작 외력이 뭔지도 모르면서, 강력하기만 한 외력을 받아들이면서 그에 맞춰 어떻게든 내력을 끼워 맞추려고 했으니 말이다.


모든 방향의 힘을 합치면 알짜힘이 된다. 알짜힘이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고 그대로이길 바랐다. 양도 아니고 음도 아닌, 방향도 없이 그저 0인 채로. 그게 가장 평안해 보이니깐. 근데 그게 아니었다. 평안해 보이는 0은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외력과 내력의 억센 다툼이었다. 균형을 맞추는 건 그만큼 힘이 든다. 그래서 잘 알아야 한다. 외부와 내 안의 압력, 그 균형점을.


평형은 평온한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처량하게 지금을 유지하기 위한 모습이다. 오리가 물 위에 뜨기 위해 쉴 새 없이 발을 구르는 것처럼. 평범한 하루를 이어가기 위해 하루하루 기를 쓰고 살아가는 것처럼. 겉에서 누르는 만큼 안에서 밖으로 밀어내야 평형을 유지할 수 있다. 건물은 내력이 더 세야겠지만 사람은 중간이 적당하다. 너무 약하면 쭈그러지고 너무 세면 펑 하고 터져버릴 테니.


화려한 삶보다 무탈한 인생이 갈수록 더욱 귀해지고 있다. 바깥은 압력투성이었다. 수많은 외력이 스쳐간다. 흘러가는 많은 외압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나에게 닿는 외압만을 파악한다. 허세를 걷어낸다. 다음엔 그에 맞는 담백한 내력을 기른다. 균형을 맞춰줄, 내 안전을 지켜줄 그 내력을 가꾼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욕심 없이 그저 내가 택한 외력에 맞춰 중간을 채워줄 그 내력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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