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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Oct 30. 2022

왜소행성 13430

과학과 에세이

2006년은 명왕성에게 가혹한 한 해였다. 그해 명왕성은 태양계에서 퇴출됐으니. 태양계 8개뿐이던 행성 무리에 끼워준 지 채 80년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명왕성에게 80년은 어찌 보면 찰나일 뿐이다. 그보다 훨씬 전에 태어나 지난한 시간 동안 태양계 끝에서 가만히 있었을 테니까. 자신을 발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몇 사람 간의 논쟁을 통해 행성이 되었다가 한순간 왜소행성으로 분류당했다. 멋대로 세운 기준에 멋대로 안 맞단다. 명왕성에겐 의식도 없을 새 자신이 속한 소속이 두 번이나 바뀌어댔다. 지구에서 피운 이 작은 소란이 그곳까지 닿았다면 참 어이가 없었겠지. 자기는 그 자리에서 늘 그렇듯 원래의 생활을 해왔을 텐데 말이다.


때로는 뜻하지 않은 일들이 불어온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바람이 다가온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해는 계속 이동하니까 그에 맞춰 끝없이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아무리 그 자리에 굳건한들 바닥의 어두운 자국은 자리를 바꿔댄다. 가만히 기다리고 참아도 내 맘대로 안 되는 것들이, 분명하게도 있었다.


그럴 땐 조바심이 나지만, 애쓰진 말고 연연하지도 않기로 한다. 결국 내가 만들지 않은 상황에선 내 의지가 반영되지 않는다. 내가 부른 일들이 아님을 알기에, 내가 내쫓지 않아도 알아서 물러갈 것을 안다. 그러니 내 신경을 너무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 남들이 뭐라고 한들, 상황이 나를 어떻게 깎아내리려 한들, 나를 지키는 사람은 내가 되어야 하니까.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은 나뿐이었다.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건 부작용이 생긴다. 갇혀 사는 것과 달리,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삶은 다르다. 명왕성은 퇴출되어도 여전히 잘만 돌고 있다. 해왕성 그늘 맡에서, 언제나 일정한 간격을 두고 태양을 돌고 있다. 행성이든 왜소행성이든, 개의치 않고 돌고만 있는데 말이다.


태양계에 가입되었던 반대로 퇴출당했던, 제 뜻이 아닌 것에 연연치 않는 명왕성처럼. 늘 그 자리에 있는, 이제는 이름조차 빼앗긴 왜소행성 134340처럼. 내 할 일만 잘 해내면 될 텐데. 어쩌면 누군지도 모를 무리의 평가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만은 않았나. 자기를 제대로 알지도 못해 이리저리 판단해대고 정정하는 사람들의 말이 가치 없음을, 태양계 저변의 천체는 진즉 알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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