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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Oct 30. 2022

지구가 아프다지만, 지금은 내가 더 아프잖아

과학과 에세이

문득 세상에 무심해짐을 느껴가는 요즘이었다. 내 살이가 힘들어, 내 벌이가 버거워, 하나둘씩 세상의 중심에서 멀어져 갔다.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거수일투족에 귀를 바짝 세우고 애정 있게 살피던 예전도 있었다. 세상에 분노하고, 세상에 공감하며, 세상에 슬퍼하던 날들. 그런 날들이 높다란 파도처럼 한 차례 지나고 나니 남은 건 잔잔해진 마음과 멀어진 감정이었다.


환경에는 여전히 관심을 가진다. 과학 이슈를 하나둘 열어 보다 보면 환경에 대한 목소리는 가볍지 않았다. 모를 수 없고, 몰라서도 안 됐다. 과학계는 타 분야에 비해 발전이니 개선이니 긍정을 담은 단어가 상대적으로 잦은 편이지만, 환경이 주제로 서게 되면 어김없이 쓴소리만 들려온다. 경고와 엄중이란 단어 앞에선 어쩔 땐 섬찟하기도 한다.


귀찮아도 라벨을 분리하고 빈 페트병은 웬만하면 밟아 쭈그러트린다. 일회용기를 써야 할 땐 씻어서 버리려 하고. 한순간의 일 회를 위해 태어난 것들을 적어도 이 회, 삼 회 정도는 쓰려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안 이루어질 때가 있다. 피곤할 때, 힘들 때, 스트레스에 너무 벅차 나를 챙기기도 고달플 때, 그런 찰나는 커피 찌꺼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플라스틱 컵을 멍하니 바라보다 쓰레기통에 그냥 툭 던지고 만다. 지구가 아프다지만, 지금은 내가 더 아프다며 궂은 정당성을 찾으며.


남을 챙기려면 그 전제엔 내가 깔려야 한다. 여기저기 치이다 내 한 몸 성하게 돌보지 못하게 될 땐 사람이 고파도 애써 참는다. 어디선가 날아온 부탁과 요청을 정중히 거절한다. 욕심낼 것 없다. 일단 나부터라고, 우선 자신부터라며 다독인다. 회복이 요구될 때 시간 내어 가지는 휴식은 나를 위한 일이면서 상대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거창하게 지구를 위하고 싶다면, 때로는 호혜롭게 주변도 챙기고 싶다면, 우선은 소박하게 나부터 챙겨야 했다.


나를 우선하는 삶, 그건 이기심과는 다른 삶이다. 버거운 순간엔 때로는 거절도 하고, 부침이 보이는 건 피해가며, 남보다는 나를 먼저 달래고 나를 보호할 줄 아는 지혜. 한때는 터부시 하기도 했던, 이제는 우선이 된 그 필요성을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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