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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Oct 30. 2022

섣부른 위로 대신

과학과 에세이

섣부른 위로를 하지 않는다. 어쩌면 더 이상 위로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대신 멀찍이 서서 지켜본다. 조용히 이해해 본다. 그 마음에 대해, 내면이 짓는 표정에 대해, 내가 이해할 수 없을 깊이에 대해. 함부로 위로하는 대신에.


연애는 해봤지만 사랑은 못 해봤을 땐 몰랐다. 사랑이 무너지면서 왜 밥을 굶어야 하는지. 풍경의 색채가 사라지고 왜 명암만 남게 되는지. 마음이 텅 비고 왜 주변에 무심해져 가는지. 연락들을 피하고 왜 일상으로 돌아오기 힘든지. 좋아했던 음식의 맛과 향이 왜 느껴지지 않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때의 내 작은 세계에선 그런 일이 아직 없었으니까.


친구가 불렀다. 고민이 있단다.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곤란할 때가 있다.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계, 전혀 알지 못하는 세상, 겪어 보지 못해서 환상 같은 이야기가 나올 때다. 어쩌나, 이번에도 그런 이야기였다. 그럴수록 말을 아꼈다. 내가 감히 모르는 고민을 섣불리 위로하게 되면 보통은 조언이 나오곤 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 위로가 아니었다. 섣부른 위로는 삼키고 감정을 곱씹는다.


내가 살아낸 작은 세계에선 아직도 모르는 이야기가 참 많다. 그래서 고민과 위로는 여전히 너무 어려운 주제다. 괜히 아는 척하지 않으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짧은 한마디로 덮어두고 싶지 않다. 장황한 수사로 달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위로는 건네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었다. 받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일이었다.


그 앞에 앉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용히 듣는 일뿐이었다. 그거면 됐다.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입을 다물고 한참을 들었다. 그리고 빈 잔을 채워줬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위로를 쉽게 건네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공감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되려 그 사람에게 진심이니까, 외려 가심이 없으니까 선뜻 꺼내지 못하곤 한다. 혹여나 잘못 건넨 위로에 상처가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머금고.


다음엔 내가 불러낸 누군가도 말없이 내 잔을 채워줬음 좋겠다. 위로는 어쩌면, 조용할 때 가장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우린 서로의 작은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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