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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Oct 30. 2022

사회생활 백신

과학과 에세이

한번 해 본 것은 쉽다. 대응법을 알고 있으니 당황하지 않는다. 그래서 학생 때도 죽어라 기출문제를 풀었다. 하지만 일상 속 모든 순간에는 새로움 투성이기만 하다. 켜켜이 쌓인 기출문제를 풀어봐도 시험장에선 처음 보는 문제에 당황하게 되는 것처럼, 사회생활엔 대비할 수 없는 변형 문제들이 자욱이 드리운다. 시험을 준비할 때야 마음을 달래줄 기출문제라도 있었지, 이제는 미리 풀어볼 문제조차 부재하다.


사람 때문에 힘들고 아프다. 짜증 나고 분할 때가 온다. 처음에는 그런 상황이 당황스러워 자신이 한없이 약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그 경험이 하나둘 지나고 나면 어느새 몸에 녹아들어 항체를 만들어냈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오면 좀 더 수월히 대처할 수 있었다. 처음 맞는 상황 또한 어떻게든 대처해 나간다. 새로운 항원에 맞서 몸속 항체들이 머리를 맞대 고민한다. 그렇게 또 하나의 항체를 만들어나간다.


너무 편한 인생도 어찌 보면 쉬운 인생이 아니었다. 항체는 자극 없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줄어든다. 나중에는 남김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백신은 여러 번 맞기도 하고 매년 맞기도 한다. 온실 안 화초보다 들판 위 잡풀이 끈질기게 버티곤 한다. 비를 맞고 눈에 파묻히며 구두에 밟히고 침에 튀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겨내는 방법을 다양하게 체득한 잡풀 속엔 항체도 두텁게 자라났다. 항체 하나 없이 편한 인생은 어찌 보면 아주 위태로운 모래성이었다.


종종 내게 다가오는 신유형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주먹 쥐며 버텨낸다. 사회생활도 백신처럼 미리 조금 아프고 말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런 출시 소식은 여전히 들리지 않으니. 나를 괴롭힌다기보다는 백신을 맞듯이 항체를 유지하는 과정이라 여긴다. 나를 보호해 줄 항체는 항원이 와야만 생기는 것이었음을 되뇌인다. 항체는 아픔을 이겨내야만 생기는 것이었고. 그것도 주기적으로 와야만 했던 것이었고.


첫 이별보다 두 번째 이별이 덜 아렸듯, 첫 탈락보다 두 번째 탈락에 좀 더 무덤덤했듯이, 항체는 어느새 몸에 쌓이고 있었다. 그만큼 아팠지만, 그렇게 면역 체계도 무사히 자라나고 있었다. 그저 아픔을 참고 버티는 것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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