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에세이
남의 떡 구경할 일이 너무 많다. 사치를 자랑하듯 내비치는 프로그램과 편집된 부분만을 드러내는 미디어. 멍하니 하나둘 보다 보면, 미세먼지가 들러붙듯 부러운 마음도 어느새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곤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부러움과 조급함을 양분 삼아 욕심이 피어난다. 내게 꼭 필요한 게 아니더라도 갖고 싶어지고, 내게 없어도 충족한 것들에게도 탐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욕심 들어내기란 여간 쉽지 않다. 숱한 것들이 감정선을 자극해대니 덩달아 만족의 폭도 좁아진다. 하나가 잘 되면 기뻐할 틈도 없이 응당 그래야 한다고 여기며 다음 걸 찾는다. 시작도 않은 것에 벌써부터 결과를 다그치기도 하고, 때로는 지금도 벅차면서 발을 더 뻗으려고 애쓰기도 한다. 내가 부족해서 그럴까 싶지만, 원래 그렇다. 하나 해내면 다음이 눈에 드는 게, 두 개 가지면 여럿이 눈에 차는 게, 남 손에 쥐어진 물건이 탐스러워 보이는 게 본능이다.
그럼에도 들어내야 하는 이유는, 무거운 건 언젠간 무너져서 그렇다. 무거울수록 붕괴도 바쁘게 다가와서 그렇다. 과적한 선박이 못 버텨 가라앉고, 무리하게 적재한 건물이 무너졌듯 뭐든 그렇다. 자연에서 제일 무거운 우라늄도 제 무게를 감당 못 해 툭하면 분열한다. 감당 못 할 무거움이 쌓이면 자연스레 무너지게 돼 있다. 남 인생 중 빛나는 찰나를, 그마저도 윤색하며 가꾼 그 잠깐의 순간이 내게 들러붙게 내버려 둘 필요가 없는 이유다.
욕심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는 건 아니다. 대신 그득한 심보를 건강히 사용해 본다. 쟤도 하고 너도 하니, 나도 해야 한다는 마음. 그도 있고 그 사람도 가졌으니, 나도 지녀야 한다는 마음. 친구도 즐기고 또래도 누리니까, 나도 하고 싶다는 마음. 그 가운데에서 내게 필요한 게 뭔지 고민한다. 타인이 쥐여 준 조급함과 부러움에서 탄생한 욕심인지, 내가 바라던 이상을 채우기 위해 태어난 욕심인지 분간하려 한다.
그렇게 욕심을 분리해낸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것을 탐하는 순간 욕망이 된다. 내게 필요하고, 성장의 발판이 되어줄 것에만 욕심낸다. 딱 감당할 정도로만. 맛있는 음식이라도 한계를 초과해 탐식하면 끝에는 결국 게워내야 한다. 한가득 시킨 음식이 남으면 결국 찌꺼기가 되어 쓰레기가 된다. 그게 욕심이고, 그래서 덜어내야 한다. 종이 한 장의 무게는 개의치 않겠지만, 200페이지가 쌓인 책 한 권은 묵직한 부피감을 낸다. 박스에 한가득 모인 종이 더미가 주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요즘은 남이 어딜 가서 뭘 했고, 무얼 가졌으며 어떤 사치를 누렸는지에 깊은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SNS에도 일부러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속이 좁은 내가 그런 것들을 보다 보면 또 들러붙을 욕심을 알아서다. 그 시간을 다르게 써 본다. 비워낸 후 여남은 진짜 욕심들, 걸러내고서야 드러나는 바람들, 헛된 욕망과는 달리 나를 채워줄 이상향이 뭔지 곰곰이 생각한다. 그렇게 여과되어 남은, 내게 허락된 욕심에만 집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