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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Oct 30. 2022

그랬구나, 혹은 그렇구나

과학과 에세이

1인칭, 3인칭, 때로는 전지적인 관찰자. 소설에선 다양스러운 눈이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지만 우린 어땠나. 오직 두 눈, 두 귀, 두 손과 발, 하나의 코와 입을 가졌다. 단지 그곳에서 보고, 듣고, 맡고, 만지고, 느낀 걸로만 판단한다. 그러다 착각한다. 내겐 당연한 일들이 왜 저들에겐 아닌지, 내겐 거뜬한 일들이 당신에겐 어렵고 고달픈 것인지. 1인칭의 한계였다.


기준점은 고유한 영역이다. 물은 100℃에서 기화하고 에탄올은 78℃에서 기체가 되듯이. 에탄올은 -114℃에서 얼고 물은 0℃에서 굳는 모습처럼. 그걸 잘못됐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나. 뜨거움을 잘 견디는 물이라면, 에탄올은 차가움을 잘 견디는 것뿐인데. 내가 편했던 분야는 당신에게 어려웠을 수 있었고, 당신의 수월한 그 영역에선 내가 곤란함을 겪기도 했던 것뿐인데.


전혀 다른 둘이 섞일 때, 둘의 기준은 마주 보며 서로의 중간값으로 향한다. 에탄올과 물이 섞여 술이 된다. 그렇게 물보다 차가움을 잘 견디고 에탄올보단 일찍 얼어버리는, 새로운 어는점이 탄생한다. 모든 액체는 그렇게 서로에게 섞이며 서로를 맞춰간다. 한쪽으로 당기는 우월감이 아닌 가운데로 향하는 적절한 거리감. 서로가 각자의 기준이 아니라, 섞여서 생긴 새로운 기준으로 서로에게 다가가야 했다.


내 기준을 상대에게 구태여 강요하지 않는다. 내겐 당연한 것이 상대에겐 아닐 수 있고, 반대로 그의 일상이 내겐 특별할지도 모르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상대의 기준 또한 나에게 억지로 들이밀지 않는다. 그러니 내 기준을 상대에게 바라지 않으며 당신의 기준을 내가 잘 받아들이길 바란다. 그 사이에서 우리의 기준이 잘 섞이고 녹아들 수 있도록. 단순히 물리적으로 혼합되는 게 아닌, 틈틈이 화합되어 혼합물이 되길 바란다.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한 마디가 그게 아냐가 아닌 이 말이 될 수 있도록. 그랬구나, 혹은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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