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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Jan 18. 2021

기역시옷(ㄱㅅ)

얼마 전 출간기념회를 가졌습니다. 감사히도 출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거기에 출간기념회까지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책을 쓰는 사람은 0.1%이며 그중에서 출간기념회를 갖는 작가는 3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전 이미 0.003%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어디서 경품 한 번 당첨된 적이 없었던 저인데 말이죠. 가볍게 생각했던 일은 실제로 가볍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출간기념회에 같이 참석한 한 작가의 주제는 '감사'였습니다. 코로나로 힘든 세상이지만 오늘도 무사히 눈 뜬 하루에, 무사히 세 끼를 먹은 사실에, 비대면으로 수업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에, 심지어 지구가 무사히 자전과 공전을 이어나감에도 감사를 느꼈다고 합니다. 순간 멍해졌습니다. 같은 하루를 살면서 감사할 일이 저렇게나 많았는데 저는 왜 불만과 부족만을 파헤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훈련소 시절, 식당에 입장하기 전에 항상 외치던 구호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음식을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라는 구호입니다. 그때는 그저 귀찮고 힘들고 얼른 밥에 다가가기 위해서 별생각 없이 외쳐댔습니다. 목소리가 작으면 들여보내 주지 않기 때문에 빨리 들어가고 싶어서 바득바득 소리를 질렀습니다. 군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던 그때의 '감사'라는 단어는 식당 문 비밀번호에 불과했습니다.


강연회가 끝나고 자리에 앉아 '감사'라는 느낌을 돌아봤습니다. 저는 강연 중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정작 행복을 좇는 과정과 그 방법론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 다음 순서의 강연을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눈앞에 있던 정답을 무시하고 있었음을요. 코로나 위기에도 온라인으로 무사히 출간기념회를 가질 수 있었단 사실은 너무나도 큰 감사거리였습니다.


지금 '기역시옷'이라는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힙합 경연 프로그램에 나온 참가자가 선보인 노래인데, 노래가 나오기까지 힘이 되어준 프로듀서, 제작진 그리고 심지어 경쟁 상대에게도 감사를 표현해 가사에 담았습니다. 내가 빛날 수 있는 그 순간은 나의 능력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무수한 도움을 받아 온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하루에도 카톡으로 친구들에게 기역시옷(ㄱㅅ)을 몇 번이나 보내면서 바보같이 몰랐습니다. 오늘 하루도 정말 '기역시옷'한 하루였다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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