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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Oct 27. 2023

헛되지 않았던 시간들

과거 어느 시점엔가 언제 끝날지 몰라 더욱 답답했던 고통과 인고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간이 길고 힘든 이유는 언제 끝나다는 기약조차 없기때문이다. '언제까지 견디면 어떤 성과나 보상이 이뤄진다'와 같은 희망고문과 같은 막연한 기대. 그러나 하루하루가 불안과 힘듦의 연속인 이에게는 한없이 길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기다림과 인고의 달디 단 열매는 꼭 우리가 그것에 연연하지 않는 순간에 슬그머니 와서 생활과 삶에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한다. 몇방울씩 거의 티도 나지 않을 만큼 옷자락에 스미던 그것은 어느 순간엔가 온전히 살갗에 닿게 되는 순간에서야 조금씩 느껴진다. 그 느낌은  긍정적인 감정과 자신감을 낳고, 삶을 지탱해 가는 또 다른 자양분이 된다. 그로 말미암아 또 다른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도전할 수 있는 씨앗이 되게 한다.




말 많고 탈도 많았던 9년의 지난 직장생활 절대로 그때의 그들을 이해할 수 없던 나는, 물론 지금도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했던 말의 의도나 의미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받아들임의 폭과 생각의 깊이가 훨씬 깊고 넓어졌다. 그떄의 나는 사람에 치이고 넘어지고 상처 입은 기억들이 많았기에 타인의 말 한마디한마디에 일희일비 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중에는 사실상 의미 없는 말, 굳이 깊은 뜻을 담지 않은 말들도 꽤 많다. 즉, 모든 이들이 매 순간 말을 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고 앞뒤 논리를 따져 말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말에는 말을 하는 목적도 왜 하는지에 대한 계기도 이유도 굳이 없었다. 시쳇말로 일상에서 주고받는 가벼운 표현의 말 또는 농담조 정도로 넘길 수 있는 말들에도 심하게 흔들렸다. 그때의 나는 타인의 마음도 모르면서 내 생각을 타인의 마음인양 가장 안 좋은 결과의 경우의 수를 생각해 대입하곤 했던 슬프지만 악습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불안이라는 감정이 떠날 날이 없던 날들이었다.


가령, "ㅇㅇ씨, 이런 큰 단위의 금액은 틀리면 안 되지.. 아이고..."라며 상사가 내게 말했다고 해보자.

사실 누구나 실수는 한다. 하루종일 여러가지 격무를 하다 보면 기본적으로 남아있어야 할 에너지까지 모두 소진됨을 느낄때가 있다. 직장이라는 곳에서는 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인지라 매 순간 고도의 집중력이 계속 유지될 수는 없는 일이다. 신체적 리듬에 의해 나도 못느끼는 사이 잠시 집중력이 해이하진 상태에서 단순계산이었기에 그 숫자 하나의 대해서만큼은 별 검토 없이 제출하게 된 보고서에서 두 개의 숫자를 바꿔 적용했다던지 하는 내용은 경우에 따라 대단히 큰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지만 원인만 생각했을 때는 사실상 실수일 뿐 정말 내용과 산정방식을 몰라서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사의 말 한마디에... "이런 것도 틀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제부터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 아니야? 직원에게서 한번 업무적 불안함을 느끼면 상사도 나도 힘들어지는데..."와 같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과 생각들이 이어지곤 했던 게 바로 예전의 나였다. 상사는 오류가 발견한 나를 몰아세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 그럴 수 있다해도 이 부분은 중요한 내용이니 각별히 신경써야 하는 부분을 언급한것으로 생각 했을 수도 있는 일이 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과정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요즈음의 나는, 실수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왜 잘못하게 되었는지 경위를 설명하고 (때로는 경위가 변명처럼 들려 듣기 꺼려하는 상사도 있으니 눈치껏) 어떻게 수정할 것이며 앞으로 재발방지를 위해 어떻게 하겠다고 두문장 정도로 줄여 대답하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편이다. 그러한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해야겠다는 결심만 남길 뿐 그 일에 대해서는 지워낸다. 무엇보다 그렇게 말한 상사에 대해서 악감정을 갖기보다 당연히 그렇게 말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한다.


이 당연하고 쉬운 것이 과거 회사에선 쉽지 않았다. 늘 잘했고 늘 열심히 했고 늘 성실했던 나였기에 '그런 직원'이라는 암묵적 타이틀에 연연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때는 회사와 그들의 업무를 대하는 나태한 태도에 이미 실망한 상태라 감정의 골도 깊었고 같은 말을 해도 그들이 하는 말은 듣기 싫었던 감정적 이유가 컸던 것도 한몫했지만 그럼에도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지긋지긋하며 끝이 없던 고민과 불안의 늪에서 지금은 몇 걸음 정도는 뒤로 물러나 있는 상태다. 늘 잘해왔고 성실했는데 이 하나의 일로 그런 나 자신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나 자신을 믿고 더 단단해지고 싶었던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았던 내 목표가 어느 순간 내 삶 아주가까이에서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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