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수술 후 매 순간 좋은 마음으로 보내려 노력했다. 잠 못 자는 피곤함도, 동시에 아이들 양육에 출퇴근까지 시간을 쪼개며 왔다갔다 제정신이 아닌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웃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만 퇴원을 앞둔 입원 마지막날에 접어든 새벽 3시 30분경엔 "여기가 지옥이구나."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남편 때문도 의료진 때문도 아니었다. 이곳은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이 아닌 일반병실이었음에도 아비규환의 병실모습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 얼마나 덜 된 인간이었는지 얼마나 편하게 살았던 인생이었는지 얼마나 건강한 삶을 영위하며 살았던 것인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물론 상황이 좋아지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면 나는 다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간사한 인간이 될지 모른다.하지만 단 며칠이든 몇 달이든 몇 년이든 평온하다 싶을 때즈음 중간점검처럼 찾아오는 인생의 우환은 사람을 겸손한 게 만들고 간절하게 만든다.
또한 이곳에 있는 날동안 간호사들의 육체적 정신적 무게에 대한 생각, 내 슬픔이 제일 큰 나머지 비매너를 넘어서 무례함을 장착한 나이 많은 이들, 의료대란으로 나라 안팎이 난리지만 그럼에도 불구 현장에서 발로 뛰고 사람을 살리고 환자의 건강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의사들에 대한 감사함까지 매 순간 복합적이면서도 단순한 가르침들을 계속해서 되새겼다.
남편에게만큼은 늘 내스스로 큰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도 무난히 넘겨왔던 기억들 때문인지 입원전날까지도 실감이 제대로 나지 않다가 수술 전날이 되어서야 실감이 났다.
불교는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님에도 부처님을 찾고 신을 찾으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종교적 행위, 미신적 행위를 다 챙기고 임했다. 오직 수술 집도 의사만을 믿으며 온전히 버티고 견뎌줄 남편의 체력을 믿으며 다른 어떤것들을 안 하려면 안 할 수 있겠지만 나는 할 수 있는 1%의 여지도 남지 않도록 모든 것을 다했다. 만일 그것이 유무형의 것 무엇이라도 내가 챙기지 못해 무언가 잘못되거나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오면 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남편이 잘못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니까.
엄마에게 부탁드려 직접 산사에 찾아가 양초를 공양하며 수술시간 내내 기도를 올려주셨고 나는 집에 보관하며 때때로 읽어 내려갔던 각종 경전들, 108 염주를 챙겼다. 수술실로 이동한 시간 내내 병실 침대 위에 걸터앉아 기도했다. 수술 전날밤 약사여래기도와 진언을 틈나는 대로 외우며 기댈 수 있고 종교적, 심리적 의지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의지했다. 그저 무탈하게 수술만 성공하면 모든 걸 다 감내하겠다는 마음이었다. 마음속으로 염불을 하는 순간 단 10초라도 잡념이 떠오를 때마다 잡념을 떠올리는 나를 책망할 시간조차 아까워 다시 정신을 제자리에 온전히 가져다 놓고 쉬지 않고 염불을 외웠다.
바라기만 하는 기도가 되면 하늘이 노할까, 그렇다고 겸손만 있는 그저 지켜만 봐달라는 기도를 올리면 간절함이 덜해질까 고민하며 고뇌하던 기도는 지칠 줄 몰랐다. 잠깐의 집중도 어렵고 오만가지 잡념이 머릿속을 가리는 일이 익숙했던 내게 유일하게 극도의 집중을 이끌어낼 수 있는 행위가 기도였다.
그렇게 2시간 40여분의 시간이 흘러 수술 종료메시지를 받았고 이윽고 40분 경이 지나 다시 병실로 돌아온 남편의 모습은 혈색도 얼굴도 썩 나쁘지 않았다. 일순간 안도감을 느꼈다. 의사도 남편이 너무 수고한 걸 알기에 감사함에 눈물이 울컥 쏟아지기 일보직전이었지만 그럴 때일수록 몇 배의 오버액션을 구사하며 위기를 넘기는 특기를 가진 나는 우는 모습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나를 아는 남편은 눈치챘을지 모를 일이다.
우선 큰 산을 넘어 너무 다행이었다. 모든 신들에게 감사했다. 우선 남편이 아프지 않았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을 통해 10년 동안 함께 살며 받은 고마움을 5%나마 보은 할 수 있었다는 마음들을느꼈다. 그럼에도 웬만하면 다시는 이런 큰 병원에 수술을 이유로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들까지.
생각해 보면 남편은 언제나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결혼한 후 크고 작은 수술을 세 차례정도 했었다. 시신경, 맹장수술, 이번수술까지. 그럴 때마다 늘 하늘이 돕듯 무사히 무탈하게 수술이 진행되고 회복되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던 일들이 얼마나 기적적인 순간들이었는가? 그럼에도 감사함 보다는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만으로 다시 안일하게 살아온 내 마음의 깊이와 모습들이 부끄러웠다.
약 7일이 경과하면서 내심 퇴원을 기대했지만 물을 먹기 시작하고 이튿날 미음을 먹고 난 다음 끼니 직전 재채기하며 나오는 핏덩이로 인해 다시 하루씩 입원일이 늘어갈 때마다 나와 남편은 완전히 상처가 아물고 퇴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견뎠지만, 9일이 경과하자 서로 감출 수 없는 실망감과 짜증으로 인해 조금씩 멘털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생각이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누르고 누르며 견뎠다.
그렇게 마침내 퇴원을 했고 앞으로 한 달 가까이는 유동식, 미음,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며 일상을 이어나가야 한다. 아직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태여서 최소 한 달은 더 지켜봐야 하기도 한다. 늘 조심해야 하는 시기다. 그럼에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열흘의 시간 동안 또 다른 작은 세상을 만났고, 그 안에서 조금 과장하면 인생의 희로애락, 삼라만상을 속성으로 배울수 있는 시간이었다.
병원 내에서 이기적인 누군가의 모습에도 사실은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나 만큼은 손해 볼 수 없다는 마음들로 인해 불평불만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라는 것. 달리 보면 그 모든 게 내 환자를 챙겨야 하는 보호자로서의 책임감이라는 사실과 배려와 이기심 사이에서의 조율이 어려운 순간들. 그럼에도 무너질뻔한 멘털을 다시금 잡으며 하루하루 지내는 병원에서의 사람들.
다시 또 경험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와 남편은 이렇게 인생의 또 한 번 고비를 넘겼고 곧 이틀 후 다가오는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깊은 가르침을 배우게 되 더없이 뜻깊은 시간이 될듯하다. 잡념을 조금 더 줄이고 내 온 에너지를 남편의 회복에 쏟아야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진짜 남편을 위한 간호의 시작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