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느다란 실오라기 같은 충고의 말, 조언의 말에도 가슴이 일렁인다. 일렁이다 잠잠해지면 나을 텐데 나의 주특기는 작은 일렁임을 극대화해 대형 파도로 만드는 일이다. 왜 그런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어떤 조언과 충고도 그 과정과 결과에 고통이 수반됨을 인지한 순간 짐 내지 스트레스 덩어리가 돼버린다.
정확히 7세부터 26세까지 파란만장으로 정리될 일관성 있는 삶을 살아왔는데 거기서 오는 구력이나 내공은 다 도망가고 없다. 그저 그때의 상처가 남긴 건 어떤 고통도 다시 또 겪고 싶지 않다는 사실이다. 조금만 천천히 하나씩 점진적으로 겪을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아프지 않았을 고통 그리고 인생이다.
맞서 싸워 쟁취하기 위해 싸우며 생기는 상흔을 마주하기 너무도 두렵다. 작은 싸움의 소지라도 보이면 처음부터 원천차단 해버린다. 보통 비굴하리만치 나를 한껏 낮춰 관계를 유지하거나 만남의 계기조차 만들지 않거나 하는 식으로 혼자만의 위기를 모면한다. 너무 어둡고 침침하다, 우울해 보인다 등으로 그런 나를 표현한다. 어둡고 침침한 게 나라고 생각했다가 나이가 드니 그조차 싫어진다. 그저 밝고 웃는 게 다인 것만 같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뭐라도 나아질 것 같다. 그래서 가슴속에 늘 화가 들어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 같다.
성격이 마냥 착하진 않지만 겁이 많다.
화는 많지만 전투력은 없다. 사람눈치는 많이 보지만 그래서 눈치가 빠르다.
무엇이 선행되어 이런 상황이 된 건지 알 수없다. 사실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를 내팽개치고 산 이십 대 초반의 날들을 후회한다. 힘들어도 끈을 놓지 않는 삶을 살았더라면 20대의 자아가 지금의 내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그게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죗값을 지금 받는다. 세상은 좋은 말보다 힘들거나 아픈 말, 오해받는 말, 속도 모르는 말을 듣기가 더 쉬운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 갑옷은커녕 실오라기 같은 옷하나 입은 채로 매일 몸에 생채기가 나고 있다. 그래서 견디겠다는 의지조차 사라졌다. 사라진 사이에 나는 생각한다. 마음을 알아주는 말 좋은 말 행복한 말 듣고 살고 싶다고.
하지만 과거에의 경험은 그 마음마저 뒤덮는다. 늘 자기 방어적 태세를 취하게 된다. 이렇지 않을지, 저렇지 않을지 생각하며 어떠한 예상치 못한 일도 일어나지 못하게 원천차단, 봉쇄하려 한다. 하지만 세상에 일어날 일은 아승지겁만큼이나 많은데 끽해야 인간의 경험은 수백, 천가지일테다. 그걸 다 방어하려고 하는 동안 머리는 하얗게 세고, 미간에 주름이 깊어지고 마음은 어둡다 못해 태워진 재가 남는다. 매일을 세월만 탓하다 시간은 흘러간다. 무언가를 활활 태워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재만남은 바닥을 청소하고 이내 물건도, 짐도 빼야 하는 시기가 온다.
지금 이 순간찰나에도 나는 놓치고 있다 불현듯 떠올린다.
좋은 말만 들으려는 마음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쁜 말도 좋은 말도 내 '감정'이 만들어낸 말이며 좋은 순간은 늘 지금에 있지 앞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