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사고 이후
호치민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핸드폰 기본 메모 어플을 켜고 머릿속 생각을 글로 써 내려갔다. 잠시도 동생 생각을 지울 수 없었거니와 애써 지우고 싶지도 않았다. 비행시간 내내 오롯이 떠나보낸 동생만을 생각하면서 울고 싶은 만큼 울었다.
사고 발생 소식을 접한 직후부터 밀려왔던 환멸감과 거부감에 당장 그때만큼은 한국에 더 있고 싶지 않았는데도, 막상 가족들을 남겨놓고 나만 한국을 뜨려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틀 간의 짧은 연차 휴가 후 사무실에 복귀해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 회사 동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안부를 물어왔다. 괜찮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아서 그냥 짧게 "심려 끼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했다. 내가 맡은 업무를 나 없는 동안 대신 처리해 준 분들께 작은 디저트를 건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유투브에 들어가면 상단에 이태원 사고에 대한 기사와 관련 영상이 쏟아져 나왔다. 내가 찾으려 하지 않아도 그냥 두세 개씩은 눈에 띄었다. 그중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전달하는 기사와 영상들만 골라서 내용을 확인했다.
나보다 일주일 더 한국에 머물다가 집에 돌아온 엄마는 매일같이 하루종일 우셨다. 한국을 떠나 사느라 몇 년이나 보지 못했던 조카를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어버린 충격과 슬픔이 클 수밖에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엄마가 눈이 부은 채로 저녁밥을 차려주셨는데, 내가 밥을 먹고 있으면 안방에서 또 우셨다.
같이 울고 싶은 걸 참으려 애쓰며 열심히 달래 봤지만 소용이 없어서 그냥 포기했다.
초반 일주일 가량, 회사 일을 소화하기 버거울 정도로 마음이 너무 힘들고 온전하지 못했다. 툭하면 생각에 잠겨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제때 처리하지 못하기도 했다. 일을 잠시 쉬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였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그 사건에 대해 스쳐 듣는 것만도 마음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지명만 들어도, 날짜만 들어도 나도 모르게 예민하게 반응하게 됐다. 혹여나 누군가가 내 앞에서 말실수라도 할까 봐, 내 마음이 상처 입을까 무서워서 누가 묻기도 전에 먼저 내가 사망자의 유가족임을 밝혔다. 그러니까 제 앞에서는 말을 조심해 주세요, 라는 뜻이었다.
일상생활을 이어나가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동생 생각에 한없이 우울해져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조용히 울고 돌아오곤 했다.
동생 생각이 많이 났지만 겉으로 크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혼자 슬픔을 떠안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동생의 지인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동생과 함께한 추억을 글로 쓰고 동생의 예뻤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공유하고 슬픔을 나누고 동생을 추모하는 걸 보고 아,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아도 되는 거구나, 새삼 깨달았다.
사고 이후 한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었는데,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앞으로 더 이상 어떤 글도 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메모 어플을 켜고 비행기에서 썼던 글을 다시 읽으며 수정했다. 다시 한번 “잘 가”라는 인사를 전하고 글을 끝냈고, 브런치에 업로드했다.
두 달이 지났다.
어느 정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순간에는 잠시 슬픈 생각을 잊고 웃기도 했는데, 그러고 나면 왠지 모를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괜찮아도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아닌데, 나 아직 하나도 안 괜찮고 너무 힘든데, 라는 생각이 곧이어 들었다. 슬픔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마음 한 켠에 먹먹함이 자리 잡아, 시도 때도 없이 울컥 눈물을 터뜨리게 만들었다.
이런 거였다. 이렇게나 힘든 거였다.
소중한 사람을 한순간에 잃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내가 직접 겪기 전에는 나도 미처 몰랐었기에,
내 힘듦과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나도 이해한다.
다음 달엔 동생을 만나러 잠시 한국에 들어가려 한다.
상황 탓에 마지막 길 배웅을 너무 짧게 했었던 지라,
미처 못다 한 많은 말들을 동생 가장 가까이에서 전해주고 싶다.
나와 우리 가족들을 비롯한 남겨진 모든 이들이
부디 이 힘든 현실을 잘 헤쳐나갈 수 있기를
견딜 수 없는 슬픔을 잘 겪어낼 수 있기를
추운 겨울을 잘 보낼 수 있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