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안간 힘이 축 빠진다.
한번 힘이 빠지면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진다.
내 우울감은 너무 깊지도 않고 파도가 세지도 않다.
아주 잔잔하고, 조용하고, 은은하다.
어린 날처럼 울며불며 악을 쓰지도 않고
어디 틀어박혀 있지도 않는다.
그냥, 갑자기 찾아온 우울과
함께 따라오는 무기력함에
최대한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저 조용히 흘러가기만 기다린다.
현실에 지쳐 힘이 든 건가
세상 일이 내 뜻대로 안 돼서 속이 상한 건가
아니면 또 세상 사는 게 불공평하다고 느껴져서 마냥 억울한 건가
우울증 같은 건 아닌 것 같다.
다행히 그런 심각한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잘 웃고, 감정도 잘 느낀다.
밥도 잘 먹고, 먹고 싶은 것도 많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나 정도면, 건강한 편이겠지? 라고 생각할 뿐이다.
솔직히 정신과 진료를 받기는 무섭다.
이렇게 아등바등 애써가며 살아서 뭐하지,
라는 생각이 가끔 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지는 않다.
다행히 나는 나를 꽤 사랑하고
내 삶도 나름 좋아하는 편이다.
그냥 가끔 이렇게 이유 없이 우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