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part.2
인간의 여러 종은 차이도 많지만 공통점도 많다. 우선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뇌가 예외적으로 크다. (중략)
커다란 뇌는 자원을 고갈시키는 밑 빠진 독이다. 무엇보다 갖고 다니기 어렵다. 커다란 두개골 안에 들어 있으면 더 그렇다. 심지어 연료도 많이 소모한다. (중략)
고인류는 뇌가 커지면서 두 가지 대가를 지불했다. 첫째, 식량을 찾아다니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둘째, 근육이 퇴화했다. (pp. 26-27)
> 뇌는 피부 세포에서 진화했다고 한다. 피부는 약해서 쉽게 상처가 나지만, 그만큼 예민하다. 두뇌는 몸 바깥의 자극을 느끼는, 단순한 기능에서 출발했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끝에 이제 두뇌는 생각하고 결정하는 일까지 한다. 피부는 잡아당기면 늘어난다. 불에 닿으면 쭈글쭈글해지기도 한다. 그처럼 뇌도 모양이 쉽게 변한다. 뇌에 어떤 자극-경험-학습이 주어지느냐에 따라 뇌의 세포들 사이의 관계망이 달라진다. 이를 뇌의 가소성(plasticity)라고 부른다.
> 뇌는 예민한 만큼 약하다. 그래서 뇌를 지키기 위해 두개골이 아주 단단해졌다. 단단한 두개골과 부드러운 두뇌가 곧바로 맞닿으면 뇌가 많이 아플 것이다. 그래서 두개골과 뇌 사이에는 뇌수가 있어서 쿠션 역할을 해준다. 두개골과 뇌와 뇌수는 균형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평소에는 두개골과 뇌수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지 못한다. 아주 가끔 머리를 크게 부딪혔을 때 뇌수가 출렁이면서 균형이 깨지는데, 그걸 뇌진탕이라고 한다.
> 두뇌는 칼로리를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두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칼로리를 계속 공급해줘야 한다. 그리고 두뇌가 에너지를 많이 쓰는 만큼 다른 기관에서 사용하는 칼로리를 줄여야 했다. 그래서 두뇌가 발달하면서 먹을 걸 찾아다니는 시간이 늘어났고, 근육량도 줄었다. 머리를 많이 쓰고 나면 단 게 당긴다는 사람이 많다. 두뇌가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칼로리를 보충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 사람은 어째서 이런 손해를 보면서까지 두뇌라는 기관을 유지한 걸까. 자연선택 이론에 따르면, 호모 종 중에서 두뇌가 발달한 개체들과 그렇지 않은 개체들 중에 두뇌가 발달한 개체들이 더 잘 살아남았고, 그들의 자손이 더 번창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두뇌가 발달한 개체들은 어떤 점 때문에 생존에 유리했을까. 1부에서는 이 점을 좀 더 자세히 공부해볼 것이다.
인간의 또 다른 이례적 특징은 직립보행이다. 대초원에서 똑바로 서면 사냥감이나 적을 찾기가 쉬워진다. 그리고 이동에 쓰이지 않게 된 팔은 다른 용도, 예컨대 돌을 던지거나 신호를 보내는 데 사용할 수 있다. 팔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날수록 그 주인이 성공할 가능성이 커지므로, 진화의 압력에 따라 우리는 손바닥과 손가락에 신경이 집중되고 섬세한 근육이 자리 잡게끔 진화하였다. 그 결과 인간은 손으로 매우 복잡한 업무를 수행할 능력을 갖추었다. 특히 복잡한 도구를 만들고 쓸 수 있게 되었다. (pp. 27-28)
> 우리는 두 발로 걷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사람이 네 발로 걷는 걸 상상하면 무척 이상하다. 보통 몸의 어딘가가 기능을 못 할 때 네 발러 기어 다니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동물들 중에는 두 발로 걷는 동물은 별로 없다. 그보다는 네 발로 걷는 동물들이 먼저 떠오른다. 우리가 잘 모르는 곤충이나 미생물들까지 포함하면 두 발로 걷는 동물은 더더욱 얼마 안 될 것이다.
> 사람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자유로워진 두 손(앞발)으로 여러 가지 도구들을 만들어서 썼다는 사실은 아주 잘 알려져 있다. 이것도 자연선택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두 발로 걷는 개체들이 네 발로 걷는 개체들보다 더 잘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 형질이 유전되어서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직립보행은 단점이 있다. (중략) 인간은 높은 시야와 부지런한 손을 얻은 대가로 오늘날 허리가 아프고 목이 뻣뻣해졌다. (p. 28)
> 진화가 곧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형질을 얻으면서, 그 부작용으로 오히려 불편한 게 생기기도 한다.
> 사피엔스의 몸은 두 발로 걷기에 아직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팔목에서 팔꿈치까지, 발목에서 무릎까지의 근육이 더 길어져야 한다고 한다. 그 부족한 만큼을 인대가 지탱하고 있다. 그래서 관절에 무리가 가면 인대를 다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여성은 더 큰 비용을 치렀다. (중략) 아기의 뇌와 머리가 상대적으로 작고 유연할 때 일찍 출산하는 여성이 더 살아남기 쉬웠고, 더 많은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자연선택은 이른 출산을 선호했다. 사실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인간은 생명유지에 필요한 많은 시스템이 덜 발달된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중략)
인간을 키우려면 부족이 필요했고 따라서 진화에서 선호된 것은 강한 사회적 결속을 이룰 능력이 있는 존재였다. 게다가 인간은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교육을 받고 사회화할 수 있는 기간이 다른 어떤 동물보다 길다. (pp. 28-29)
> 두 발로 걸으려면 위-아래 균형이 잘 맞아야 한다. 그러자면 몸이 옆으로 너무 커지면 안 된다. 초등학생 때는 남학생과 여학생의 달리기 실력에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여학생들의 경우, 출산할 능력을 갖춘 이후에는 남학생보다 달리는 속도가 느려지는 사람이 많다. 여성이 아기를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낳으려면, 골반이 옆으로 벌어져서 아기가 나오는 길이 넓어져야 한다고 한다. 여성의 몸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 사람의 아기는 혼자 힘으로 살기에는 많이 부족한 상태로 태어난다. 스스로 살 수 있으려면 한참을 자라야 한다. 아기가 다 자랄 때까지는 주변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 아기를 함께 키우면서부터였다는 이야기는 매우 설득력 있다.
> 예전에는 사람의 평균수명이 아주 짧았다. 아기들이 3세 이전에 일찍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힘을 합쳐 아기를 보호한다고 해도, 한 번 병이 나면 고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병에 취약한 아기들은 치료받지 못하고 금방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용광로에서 막 꺼낸 녹은 유리덩어리 같은 상태로 자궁에서 나온다.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게 가공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아이를 교육시켜 기독교인이나 불교도로도, 자본주의자나 사회주의자로도, 호전적 인물이나 평화를 사랑하는 인물로도 만들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p. 29)
> 사람은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그래서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각자가 타고 나는 성격이나 자질은 다르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교육시키느냐에 따라 그 아기가 어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은 하늘과 땅처럼 달라질 수 있다.
> 가장 잘 알려진 예가 히틀러이다. 히틀러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감수성 예민한 소년이었다고 한다. 그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억눌러졌다. 그 억하심정 때문에 그가 안 좋은 길로 들어섰을지도 모른다.
먹이사슬에서 호모 속이 차지하는 위치는 극히 최근까지도 확고하게 중간이었다. (중략)
중간에서 꼭대기로 단숨에 도약한 것은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중략)
인간은 너무나 빨리 정점에 올랐기 때문에, 생태계가 그에 맞춰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인간 자신도 적응에 실패했다. (중략) 인간은 최근까지도 사바나의 패배자로 지냈기 때문에, 자신의 지위에 대한 공포와 걱정으로 가득 차 있고 그 때문에 두 배로 위험해졌다. 치명적인 전쟁에서 생태계 파괴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참사 중 많은 수가 이처럼 너무 빠른 도약에서 유래했다. (pp. 30-31)
> 사람 속으로 묶을 수 있는 동물 종들은 자연 상태에서는 먹이사슬의 중간쯤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덩치로 보나 힘으로 보나 중간쯤이 적절해 보인다.
>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등장하고 나서 10만 년 정도 흘렀다. 그 사이에 사람은 먹이사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10만 년은 생물학적인 진화가 일어나기에는 아주 짧은 시간이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는 아직 먹이사슬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동물로 진화하지 못했다.
> 우리는 예전에 <어린 왕자>를 읽었다. 어린 왕자는 자기가 살던 별을 떠나서 6개의 별을 여행한다. 여행에서 그는 임금님, 박수를 받고 싶어 하는 남자, 알코올 중독자, 교수님, 숫자를 세는 사람, 가로등 켜는 사람을 만난다. 이 여섯 명은 각자 사람이 갖는 불안한 마음을 상징한다. 유발 하라리 교수님은 사람이 그런 불안한 마음을 가지는 이유를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