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지식의 나무 part.1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최초로 마주쳤을 때 승리한 것은 네안데르탈인 쪽이었다. (p, 42)
> 호모 사피엔스는 7만 년 전쯤에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그 전에도 다른 대륙으로 가려고 여러 번 시도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때마다 다른 사람 종에게 막혀서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호모 사피엔스를 가장 많이 가로막았던 것은 네안데르탈인이었다고 한다. 그 때만 해도 호모 사피엔스의 공동체는 네안데르탈인의 공동체와 싸워서 이길 만한 능력이 없었나보다.
>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부터 다른 사람 종들보다 앞서 나갔던 건 아니었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셌다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일대일로 맞붙었을 때,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을 이길 수 없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네인데르탈인을 이기려면 특별한 전략이나 계획을 세워야 했다.
> 1장 댓글에서 나는, 호모 사피엔스 스스로 인간 종의 중심이라는 착각을 깨트리기 위해 유발 하라리 교수가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부분은 유발 하라리 교수의 주장에 대한 확실한 근거가 된다. 지구상에 호모 사피엔스 말고도 다른 사람 종이 여럿 살았다는 것,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부터 사람 종의 중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한 학생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싸웠다는 거나 그 싸움에서 누가 이겼는지 같은 건 어떻게 알아요?
> 나는 이렇게 답해주었다 : 지난 시간에도 이야기했지만, 이 시절에 있었던 일은 화석 증거를 가지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 시절 사람 종의 동물들은 문자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나 네안데르탈인의 시체가 잔뜩 발견되었고, 그 시체에 무언가에 맞은 상처 같은 게 남아 있으면 그곳에서 큰 싸움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화석 증거가 워낙 부족하기 때문에, 얼마 안 되는 증거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지어내야 한다. 그 이야기들 중에 가장 합리적이고 설득력있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매우 특별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무리를 지어 두 번째로 아프리카를 벗어난 것이다. 이번에 이들은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인간 종들을 중동에서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에서 몰아냈다. 그리고 놀랍도록 짧은 시간 만에 유럽과 동아시아에 이르렀다. 약 45,000년 전, 이들은 어떻게 해서인지는 몰라도 대양을 건너 그때까지 인간의 발길이 닿은 적 없는 호주에 상륙했다. 그들은 약 7만 년 전부터 5만 년 전까지 배, 기름 등잔, 활과 화살, 바늘(따뜻한 옷을 짓는 데 필수도구)을 발명했다. 예술품이나 장신구라고 분명하게 이름 붙일 만한 최초의 물건들도 이 시기를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45쪽의 '사자-남자'를 보라). 종교와 상업, 사회의 계층화가 일어났다는 최초의 명백한 증거 역시 이 시기의 것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이런 전례 없는 업적이 사피엔스의 인지능력에 혁명이 일어난 결과라고 믿는다. (p. 43)
> 7만 년 전부터 호모 사피엔스 무리에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전에 없던 도구들을 발명했고, 종교, 상업, 계층 같은 문화적 특징들도 만들어냈다. 지금 사람들이 만든 문명의 씨앗이 이 시절부터 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사람 종을 몰아내고 지구를 차지한 게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났다는 사실보다 새로운 유물이 나왔다는 게 더 신기한 일일 수 있다.
> 전에 없던 물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는 건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의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피엔스의 머릿속에 새로운 관념(conception)이 자리잡고,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까지도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날카로움'이라는 관념을 생각할 수 있어야 날카로운 도구를 만들 수 있다. '날카로움'이라는 개념을 동료들과 공유하려면 특정한 소리를 '날카로움'이라는 뜻으로 쓰자고 약속해야 한다.
> 약 7만 년 전부터 5만 년 전까지의 기간 동안 호모 사피엔스는 새로운 관념과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를 폭발적으로 많이 만들어낸 듯하다. 그 시절에 호모 사피엔스는 배, 기름 등잔, 활과 화살, 바늘 등을 발명했다. 심지어 예술품이나 장신구 같은 것들까지 만들었는데, 이는 실질적인 쓰임새가 없는 물건에도 가치를 두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 뿐만 아니라 종교와 상업, 사회의 계층화의 흔적까지 보인다. 호모 사피엔스가 허구적인 것을 지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었으며,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 거래하는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다른 사람 종은 이 정도 수준까지 나아가지는 못 했던 것 같다.
> 다른 사람 종도 죽은 사람을 매장하기는 했지만, 거기서 종교가 만들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공동체와 공동체가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기는 했겠지만, 필요한 것을 교환하면서 평화롭게 지내지는 못 했을 것이다. 힘이 세거나 권위를 가진 개체가 공동체의 우두머리가 되었지만, 그게 신분처럼 대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듯하다.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중략)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론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의 뇌의 내부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지식의 나무(창세기에 금단의 열매 중 선악과가 열리는 에덴동산의 나무 - 옮긴이) 돌연변이'라고 부를 수 있다. (중략) 지식의 나무 돌연변이를 일으킨 원인보다는 그 결과를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새로운 사피엔스의 언어에 어떤 특별한 점이 있었기에 사피엔스는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최초의 언어는 아니었다. 모든 동물은 언어를 구사한다. (pp. 44-45)
> 1부의 제목은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이다. 이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이 크게 바뀐 사건을 가리킨다고 했다. 인지혁명은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인간종들을 제치고 앞서 나갈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는 인지혁명을 겪으면서 문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는데, 이는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동물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갈림길이 되었다. 그만큼 '인지혁명'이라는 개념은 이 책에서 중요하다. 그 개념이 드디어 여기서 등장한다.
> 인지혁명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7만 년 전쯤에 이미 지금의 사피엔스 만큼의 인지능력을 갖추었다고 한다. 생각하는 능력만 따지면, 그들이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만큼 똑똑했다는 이야기다. 무엇이 인지혁명을 일으켰는지 알 방법이 없다. 현재로서는 몇 가지 가설을 세우고 상상만 해볼 따름이다. 그 가설들 중에 가장 그럴듯한 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뇌에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나 뇌의 배선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 원인이야 어떻든, 인지혁명은 이미 일어났다. 인지혁명이 호모 사피엔스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알아보는 것이 더 의미있을 것이다. 인지혁명의 핵심은 '언어'라고 한다. 우리가 언어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할 일은 별로 없다. 자기도 모르게 언어를 배워서 쓰고 있으니 우리는 언어를 쓰는 능력을 타고나는 것처럼 느낀다. 언어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보니 사람이라면 당연히 언어를 쓸 줄 알 것이라 여긴다.
>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봤을 때, 사피엔스만큼 언어를 정교하게 쓰는 동물은 없다. 동물들도 자기들끼리 소통을 한다. 그것을 그들 나름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동물들은 주로 소리와 몸짓으로 소통한다. 원숭이, 돌고래, 개, 벌, 앵무새 같은 동물들은 사람 만큼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의 언어와 동물의 언어는 어디서부터 달라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