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를로르, <꾸뻬 씨의 행복 여행>
글쓰기 동아리에서 첫 번째 글쓰기 주제로 '여행'을 골랐다. '여행'이라는 낱말은 나에게 묘한 울림을 준다. 여행은 잠시 일상을 떠나 다른 삶을 살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을 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왠지 더 여유로울 것 같고, '쓸데없는 짓'에 쉽게 용기를 낼 것 같고, 평소에 하지 않을 행동도 더 많이 할 것 같다. 그런데 여행에 대해서 글을 쓰려니 한여름 대낮에 백사장에서 잃어버린 동전을 찾는 듯한 막막함이 밀려왔다. 우리는 여행이라는 낱말과 우리 사이에 작은 징검다리라도 놓기 위해 여행에 관한 책을 한 권 읽고 그에 대한 감상문을 쓰기로 했다. 우리가 고른 책은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이라는 얇은 소설이다.
나는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소설보다 영화로 먼저 알게 되었다. 수업에서 학생들과 함께 그 영화를 몇 번 보기도 했다. 이번에 책을 읽어보니, 책의 큰 얼개는 영화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의 몇몇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덕분에 책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꾸뻬 라는 이름의 정신과 의사는 자신이 환자들을 충분히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꾸뻬는 여행하면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20가지 정도를 메모했다. 꾸뻬는 그것들 중에 비슷한 것들끼리 묶어서 세 덩어리를 만든다. 하나는 흥분한 상태의 행복, 두 번째는 평화로운 행복, 마지막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행복이다. 꾸뻬는 환자들을 만날 때 그 환자와 잘 맞는 덩어리를 골라 처방한다.
꾸뻬는 그 중에서 중국의 어떤 늙은 스님에게서 배운 것에 가장 큰 감동을 받았다.
[노승은 침묵 속에서 꾸뻬에게 태고적부터 있어온 한 가지 영원한 진리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것은 행복에 대한 욕망이나 추구마저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과 하나가 되어 존재할 때 저절로 얻어지는 근원적인 행복감이었다. 이 근원적인 행복은 자주 찾아오지 않지만,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으며, 세상에서 얻는 다른 모든 행복의 기존을 이루는 것이었다.] (p. 189)
이것은 마치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수준 높은 행복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행복에 대한 욕망'은 분명 내 안에 있는 나의 일부이다. 나의 일부를 지워서 없는 것으로 쳐서 느끼는 행복이 과연 내게 의미가 있을까? 그 욕망 때문에 괴로워진다고 할지라도 그 괴로움까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더 의미있지 않을까?
오히려 나는 꾸뻬의 베움 노트 중에서 20번째 글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움 20_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p. 181)
발리섬에는 '다른 들판에는 다른 메뚜기가 산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같은 메뚜기여도 어느 들판에 사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사람에게도 이 말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 같이 좁은 곳에서조차도 지역마다 문화가 다르다. 하다 못해 순대를 먹을 때도 어디에서는 쌈장에 찍어 먹고, 어디에서는 새우젓에 찍어 먹는다. 하물며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정은 말할 것도 없이 사람마다, 시대마다, 동네마다 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육체적 욕구가 채워졌을 때 행복을 맛볼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다른 사람을 이기고 남들보다 높은 곳에 올라섰을 때 행복을 거머쥐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면 어떤 사람은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큰 질서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해냈을 때 느껴지는 행복에 감사할 것이다. 또 다른 어떤 사람은 논리적, 합리적인 전략을 통해 돈을 많이 벌게 되었을 때 행복이 늘어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면 어떤 사람은 세상 모든 것의 가치를 진정성있게 존중하면서 존엄한 개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데에서 행복을 추구할 것이다.
꾸뻬가 행복의 의미를 찾아다니면서 행복의 여러 가지 기준을 찾아 낸 것은 아주 잘 한 일인 것 같다. 사람들은 정말 각자 다른 이유로 행복을 찾고, 각자 다른 곳에서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꾸뻬가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한 가지 정답만을 찾고 싶다는 욕심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 것처럼 느껴져서 아쉽다. 나는 이 책이 이런 물음들을 던지면서 끝났다면 훨씬 더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왜 사람들은 각자 다른 곳에서 행복을 느낄까?'
'사람들마다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 어째서 다 다를까?'
'나는 왜 하필이면 여기서 행복을 느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