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 <멀티팩터>
김영준 작가의 첫 번째 책인 <골목의 전쟁>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골목 상권을 다룬 책이었다. <골목의 전쟁>은 나온 타이밍이 아주 좋았다. 책이 나올 때 즈음에 골목 상권이 아주 핫한 이슈였기 때문이다. 책에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하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 책을 읽을 때쯤 나는 나를 프리랜서-소상공인-영세 자영업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비즈니스에 관한 인사이트를 조금씩 궁금해하던 차였기 때문에 배울게 꽤 많았다.
그 책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한국은 경제활동인구에서 자영업자의 비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은 편이다. 그런데 영세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에 몰려 장사를 근근이 이어나가는 것보다는 대규모 유통 기업이 이들을 고용하거나 이들로 하여금 가맹점을 열도록 하는 것이 수입 면에서나 안정성 면에서나 훨씬 낫다고, 책쓴이는 주장했다. 내가 평소에 알고 있던 상식과 반대되는 이야기였다. 이 주장을 내 사업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지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김영준 작가의 글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주의 깊게 읽었다. 그는 꾸준하게 비즈니스에 관한 글을 썼다. 많은 사람들이 비즈니스에 대해 잘못 아는 것이나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바로잡는 데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그는 특히 유사 경제학, 유사 경영학 장사꾼을 호되게 비판했다. 나는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주제에 섣불리 회사를 차려버린 터라 유사 경제학이나 유사 경영학에 잘 낚이는 편이었다. 뒤늦게나마 그의 글을 통해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왔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수업과 교육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비즈니스에 대한 공부는 뒷전에 두었다.
올해 초에 그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책이 나오자마자 샀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책꽂이에 꽂아두기만 했다. 최근에 겨우 짬이 나서 책을 펼쳐 읽었다. 나는 이 책을 지금 읽은 게 아주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19 때문에 우리 회사는 3-4월에 아주 크게 휘청했다. 지금도 회사가 완전히 일어선 것은 아니다. 지금도 조합원들이 많이 고생하고 있고, 꾸역꾸역 어떻게든 버티는 중이다.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내가 해온 사업에 대해 여러모로 고민을 거듭했다.
이전까지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보호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만 해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해왔다. 사업이 한 번 곤두박질치고 나니 이 상황을 내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나에게는 나 스스로에게 이 상황을 설명할 언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좋은 경영자가 아니어서 이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나가지 못하는 것이라 자책하기만 했다. 그제야 비즈니스에 대해, 경영에 대해, 조직운영에 대해, 조직원 관리에 대해, 데이터와 숫자에 대해 뒤늦게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김영준 작가의 두 번째 책 제목은 <멀티팩터>이다. 말 그대로 성공에는 자본, 인맥, 재능, 노력, 운 등등 여러 가지 팩터들이 복잡하게 작용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너무 당연해서 누구나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하고, 수업 시간에 선생님 이야기 잘 듣고,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하면 전교 1등 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잘 먹히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에 흠뻑 빠져서 불과 며칠 만에 다 읽어버렸다. 나는 책을 아주 느리게 읽는 편인데, 이 정도면 나로서는 엄청 서둘렀다 싶을 정도이다. 책쓴이가 말하려고 하는 바는 너무 당연하지만, 그 당연한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사례들이 신선해서 읽는 맛이 있었다. 책쓴이는 공차, 월향, 프릳츠 커피 컴퍼니, 마켓컬리, 스타일난다, 무신사 등 요즘 들어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회사들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이 회사들은 사업의 뒷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재미있게 읽은 또 다른 이유는 책쓴이가 하는 당연한 말이 다른 당연한 말의 빈틈을 조목조목 파고들기 때문이었다. 성공한 사업가가 되는 법을 알려준다는 콘텐츠는 세상에 엄청 많다. 그런 콘텐츠들은 주로 성공한 사업가들이 어떤 고난을 겪었고, 그 고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사업가의 영웅적인 스토리를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책쓴이는 그 숱한 성공비법서들과 자기계발서의 메시지를 이렇게 반박한다.
비즈니스에서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양하다. 또한 최근들어 노력을 모든 것의 해결방법으로 보는 시각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사업가가 본인의 힘과 노력만으로 거둔 성공만을 가장 가치있게 평가하는 시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성공을 평가할 때도 그 모든 요소들을 인정해야 한다. (본문 중, p. 209)
책쓴이는 성공을 단순히 돈을 많이 벌거나, 회사가 커지거나, 사업가가 유명해지거나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책쓴이는 성공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 번 성공하면 브랜드, 자본 등에서 우위를 갖게 되고, 이러한 우위가 계속 이어지는 경쟁에서 또 다른 성공으로 이끄는 우위가 된다. 이 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은 더 큰 성공을 위한 '우위의 획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본문 중, p. 289)
비슷한 아이템을 가지고 창업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노력한다고 다 성공한다면, 이 모든 회사들이 다 성공해야 한다. 하지만 그중에 성공하는 회사는 몇 없다. 수많은 회사들 사이의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사업가는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사업에 다 쏟아부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도 사업의 결과는 운에 맡겨야 한다. 책쓴이는 운이 확률의 다른 말이라고 한다. 확률이 아무리 낮더라도 0이 아닌 이상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운에 따라 사업은 대박이 날 수도 있고 쪽박을 찰 수도 있다. 성공할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자원을 최대한 많이 동원해야 하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우위에 서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성공한 사업가들이 더 많은 점에서 유리한 곳에 서려고 노력했다는 걸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뿐만 아니라 사업가가 고난을 이겨내고 피나게 노력해서 성공한 게 아니라 다른 자원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이유도 없다. 사업가들은 '우위를 획득'하는 것에 실패하면 언제든지 사업이 기울어질지도 모른다는 리스크를 지고 있고, 사업이 커질수록 그 리스크는 더 커진다. 어쩌면 우리는 자기 입맛에 맞는 성공 스토리를 가진 사업가를 찾을 시간에, 각 회사가 가진 자원과 가지지 못한 자원을 분석해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회사에 입사 원서를 내거나 투자를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2014년에 작은 교육협동조합을 차려서 지금까지 일을 해오고 있다. 내년 2월이면 이사장으로서의 내 임기가 끝난다. 되돌아보면, 교육적 가치는 어느 정도 이룬 것 같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꽤나 훌륭하게 자라고 있고, 학부모님들 만족도도 높기 때문이다. 이는 높은 재구매율, 코로나 19 시대에도 어느 정도 유지되는 매출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회사가 비즈니스적으로도 잘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회사를 차릴 때 무슨 자원을 얼마나 가지고 있었는지, 그 자원을 충분히 써먹었는지를 두고 찬찬히 생각해보아야겠다.
책쓴이는 스스로를 프리랜서 글쟁이라고 부른다. 나도 읽고 쓰기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책 한 권 내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있다. 내가 이 책에 깊이 빠져들었던 세 번째 이유는,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먼저 가고 있는 사람이 이 책 하나를 쓰기 위해 어떻게 일했을지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책쓴이가 생각의 토대로 삼고, 책에 써먹을 글줄을 가져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을지, 성공한 회사들의 사례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들을 뒤졌을지, 그 모든 내용들을 이리저리 꽈배기 하면서 글이 나아갈 곳을 잃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가 느껴져서, 그야말로 책쓴이와 이야기를 나누듯 책을 읽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