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part.1
[지금까지 살아남은 인공물로 고대 수렵채집인의 삶을 재구성하는 일에는 문제가 많다. 고대인들과 그 후손인 농경시대, 산업화시대 사람들 사이의 확연한 차이 중 하나는 고대 수렵채집인들에게는 인공물이 극히 드물었고, 인공물이 고대 수렵채집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대단치 않았다는 점이다. 풍요로운 현대사회의 전형적인 구성원은 평생 살면서 수백만 개의 인공물을 갖게 된다.] (p. 74)
> 인지혁명이 일어나고 호모 사피엔스는 허구적 실체(fictional entity)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그 후로 사피엔스의 삶에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지금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그에 따라 유행도 순식간에 바뀌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세상이 언제나 지금만큼 빠르게 변했을 것이라 잘못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고대 수렵채집인의 삶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바뀌었다. 우리가 역사 공부를 할 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변화든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 몇 년에 걸쳐 일어난 일이 역사책에서는 고작 몇 줄로 정리되어버리곤 한다. 특히 교과서가 그렇다. 종교개혁이나 시민혁명, 산업혁명, 세계대전 등과 같이 사람의 문명에 영향을 미친 일조차도 교과서에는 짧은 글줄 몇 개로 금방 지나가버린다. 아마 그 사건들이 진행되는 동안, 그 시절을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가족을 잃었을 것이다. 또한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뒤에 사람들의 삶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교과서를 읽는 것만으로는 그 사건들의 힘이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 우리는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꽤 오랜 기간을 조심하며 지내고 있다. 그 사이에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많은 것이 바뀌고 있다. 내가 만나는 청소년들만 해도 그렇다.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 것보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각자 알아서 수업을 듣고 숙제를 낸 다음 수업을 들었다고 체크하는 것이 더 편하다. 학교에는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달에 한 번 정도로 가끔 가는데, 그러다 보니 학교에 가는 게 너무 귀찮고 괴로운 일이 되었다. 한 학년이 다 끝나가도록 같은 반 친구들 이름은커녕 자기 반이 몇 명인지조차도 모르는 학생들도 많다. 학교는 이제 학생들의 삶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곳이 되었다. 시험 치고, 성적 받고, 그 외에 진학에 필요한 서류를 받는 곧 정도일까. 그렇지만 50년-100년쯤 뒤에 나올 교과서에는 우리가 겪은 커다란 변화가 아주 짧게만 다루어질 것이다.
> 심지어 역사학자가 보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은 책에 싣지도 않는다. 생일이나 친구들과의 소중한 기념일, 가족과의 중요한 추억 같은 것들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역사학자가 보기에 그런 일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 되거나, 당신 스스로 당신의 역사책을 쓰지 않는 이상, 역사책에 당신 삶의 중요한 일들이 적힐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러니 역사 공부를 할 때, 어떤 일이 책에는 짧게 적혀 있더라도, 그 일을 실제로 겪은 사람들에게는 그 일이 아주 길게 느껴졌을 것이며, 또한 그들의 인생을 뒤바꿀 정도로 큰 사건이었을 거라 상상하는 습관을 기르면 좋다.
> 그런데 고대 수렵채집인의 삶은 기록으로 남겨져 있지 않다. 문자와 언어가 아직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이 만들었던 물건들을 가지고 그들의 삶의 모습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이 필요한 물건을 만들기보다는 자연에 있는 것들을 그대로 가져다가 썼을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직접 만들었던 몇 안 되는 물건들 중 대부분은 무너지거나 썩어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알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고대 수렵채집인의 신앙과 의식을 이해하려면 난처하기만 하다. 이것은 미래의 역사학자가 21세기 미국 십대의 사회적 행태를 재래식 우편물만 가지고 그려야 할 때 처할 딜레마와 거의 비슷하다. 그때는 전화 통화 내용, 이메일, 블로그, 텍스트 메시지는 전혀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중략) 이 문제를 시정하는 방법 중 하나는 현대의 수렵채집 사회를 살펴보는 것이다. (중략) 하지만 현대 수렵채집 사회로 고대 수렵채집 사회를 추론할 때는 반드시 주의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첫째, 현대까지 살아남은 모든 수렵채집 사회는 이웃한 농경 및 산업사회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이들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 수십만 년 전에도 그러했으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둘째, 오늘날 수렵채집 사회가 살아남은 지역은 주로 기후가 거칠고 땅이 황량하며 농사에 적당치 않은 곳이다. (중략) 이것은 인간 무리의 규모와 구조 그리고 무리들 간의 관계에 대한 핵심질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셋째, 수렵채집 사회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들 사회가 서로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지역별로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요, 같은 지역 내에서도 차이가 크다.] (pp. 75-76)
> 옛날의 수렵채집인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알 수 있는 증거는 남은 게 별로 없다. 그들은 필요한 물건을 만들 때 아마 돌보다는 나무를 많이 썼을 것이다. 돌은 단단해서 모양을 바꾸기 어렵지만, 나무는 부러뜨리거나 갈아서 필요한 모양으로 바꾸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무로 만든 물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썩어버렸을 것이다. 그나마 돌로 만든 물건들이 많이 남아 있으니, 그걸로 수렵채집인의 삶의 모습을 짐작할 따름이다. 우리는 그 시대를 구석기, 신석기라고 부르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그 시절을 더 잘 나타내려면 구목기, 신목기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 요즘도 지구에는 수렵채집 사회가 드문드문 남아 있기는 하다. 우리는 그 사회의 모습을 보고 아주 오랜 옛날의 수렵채집인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수렵채집사회'라는 이름으로 함께 묶을 수 있다고 해도, 옛날의 수렵채집사회와 지금의 수렵채집사회를 직접 비교하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의 수렵채집 사회는 주변의 농업 또는 산업 문명사회로부터 영향을 꽤 많이 받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 뿐만 아니라 지금의 수렵채집 사회는 사람이 모여 살기 힘든 환경에 많이 남아 있다. 이런 곳에서는 농사를 짓거나 다른 산업 활동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문명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같은 수렵채집 사회라고 해도 동네마다 삶의 모습은 다 달랐을 것이다. 사람의 삶이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농업과 문명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지금까지 수렵채집사회로 남은 곳을 고대 수렵채집사회와 직접 비교해서 얻을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 이 부분에서 유발 하라리 교수는 역사 공부를 할 때 지금의 관점에서 과거를 보지 않는 것, 서로 다른 것을 뭉뚱그려서 하나로 퉁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자면 우리가 공부하려는 시대에 만들어진 자료를 직접 최대한 많이 봐야 하고,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럴듯한 가설을 여러 가지 만들어봐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정답이라고 지나치게 확신해서도 안된다. 사실 역사 공부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을 공부할 때도 이런 태도를 가지는 건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