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 <죽은 자의 집청소>
11월 초에는 결혼식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 집에서 나는 청소, 빨래, 보급, 기타 등등의 집안일을 맡고 있는데, 바빠서 그 일들을 할 짬이 나지 않았다. 얼른 집을 정리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조급함과, 자꾸 지저분해져만 가는 집에 대한 답답함이 차곡차곡 쌓이던 어느 날, 집 정리를 대신해준다는 서비스를 한 번 써보기로 했다. 하루짜리 파출부를 부른 셈이다. 그분은 우리 부부가 집을 비운 사이에 집을 말끔하게 정리해주셨다. 전문가답게 청소를 나보다 훨씬 깨끗하게 해주셨음은 물론, 평소에 벼르고만 있던 창틀과 문 틈새 같은 곳도 싹싹 닦아주셨다.
나는 그때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남에게 시키면서 부려먹은 듯한 느낌도 들고, 엄청 부자가 된 것 같기도 했다. 내 주변 어른들 중에 10대 중후반쯤부터 식모살이를 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한 분들이 많은데, 이제는 내가 집안일을 남에게 시킬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긴 건가 싶었다. 물론 나와 부인 둘이서 버는 거 생각하면 아무 때나 마음대로 서비스를 요청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다만 서비스업이 엄청 발달한 덕분에, 별 걸 다 돈 주면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을 따름이다.
청소를 하다 보면 가끔 벌레의 시체 같은 것도 치우게 된다. 솔직히 꺼림칙하고 찝찝하지만 내가 맡은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 나는 바퀴벌레나 커다란 거미 시체가 개인적으로 제일 싫다. 그런 걸 치우고 나면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진다. 가끔 길을 가다 비둘기나 고양이 시체를 가끔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작은 벌레 시체만 해도 손 대기 싫은데 저걸 치워야 하는 누군가는 얼마나 기분이 안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하물며 사람이 죽은 자리를 뒷정리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떨지는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죽은 자의 집청소>를 쓴 김완이라는 사람은 자신을 '특수청소부'라고 부른다. '특수청소'라는 말 그대로, 그는 누구도 선뜻 손대려고 하지 않는 곳을 치우는 일을 한다. 누군가 혼자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집, 사람이 사람을 죽인 사건이 벌어진 곳, 쓰레기가 쌓이고 쌓여 산이 되어 도무지 치울 엄두를 내기 힘든 방, 거대한 도시의 구석진 곳을 전전하다 죽어버린 동물의 시체 같은 것들을 그는 치운다. 그중 어느 것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일을 하면서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가장 힘들 것 같다.
김완은 일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들을 읽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써냈다. 그래서인지 책에 담긴 사연의 무게에 비하면 책이 술술 잘 읽히는 느낌이다. 나는 책을 느리게 읽는 편인데, 그런데도 하루 밤낮에 다 읽었다. 하지만 아무리 가볍게 쓰려고 해도 그 무게가 잘 줄어들지 않는 일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그가 하는 일 때문에 그의 몸과 마음에 남겨진 흔적들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김완은 자기가 하는 일이 그저 서비스업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남이 해달라는 일을 돈 받고 대신해주는 것일 뿐, 그리 대단하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감상에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고, 일과 자신 사이에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둠으로써 멘탈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하는 일을 '서비스업'이라고 부름으로써 그는 한편으로 남들은 안 하는 일을 해낸다는 자부심을 버리고 자신의 일을 담담하게 대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죽은 덕분에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죄책감을 벗어날 수 있다. 이 죄책감은 시도 때도 없이 그를 찾아와 마음을 짓누르는 것 같다.
당신이 하는 일처럼 내 일도 특별합니다.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인 귀중한 사람이 죽어서 그 자리를 치우는 일이거든요. 한 사람이 두 번 죽지는 않기 때문에, 우직 한 사람뿐인 그분에 대한 내 서비스도 단 한 번뿐입니다. 정말 특별하고 고귀한 일 아닌가요? (본문 중)
나도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경계선을 어디쯤에 그어야 할지 고민할 때가 많다. 특히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오랫동안 공부해왔던 학생이 갑자기 수업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그런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너무 큰 상처를 받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면서 일을 계속하기 위해, 나는 스스로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사람일 뿐이라고 다독인다. 수업료를 받았고, 그에 따른 서비스를 제공했으면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그 서비스를 다시 살지 말지는 소비자들이 정할 일이다. 만약 그들이 내가 파는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 때, 새로운 서비스를 찾아 떠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김완이 하는 일이 '특수청소'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가 하는 일이 사람의 죽음과 깊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면 아직 살아 있는 누군가는 죽은 사람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 의사는 사망 진단을 내려야 하고, 공무원은 죽음과 관련된 행정처리를 해야 한다. 시체를 닦고 장례 준비를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죽은 사람이 가족이 없이 혼자 살았던 경우에는 누군가 그의 집과 유품을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죽음에는 온갖 신비와 금기가 드리워져 있다. 사람은 죽고, 그 죽음을 뒤처리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는데도, 있는 걸 있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사람들이 죽음을 삶의 일부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래서 죽은 사람의 이웃들이 기꺼이 나서서 그 집을 청소한+다면, 특수청소라는 서비스는 애초에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학교 공부만으로도 자기 미래를 설계하고 알아서 잘 살아갈 수 있다면 나 같은 사람이 학교 밖에서 교육 서비스를 굳이 더 팔아야 할 필요가 없듯이 말이다. 그런 점에서, 감춰져 있고 금기시되던 무언가를 사람들 눈 앞에 드러내고, 사람들이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는 일을 대신함으로써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좋은 비즈니스인 것 같다는 생각을 뜬금없이 했다.
내가 죽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종종 상상한다. 그 상상은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누가 가장 슬퍼할까. 하는 장면에서 멈춘다. 그건 마치 SNS에 포스팅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아무래도 나에게 심각한 관종끼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역설적으로, 죽음이 한참 멀리 있는 일이어서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보니 저런 식으로밖에 생각을 안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죽음에 대한 생각이 좀 더 넓어졌다. 죽고 난 다음에 내 몸이 어떻게 될지,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지 하는 것들을 말이다.
사람이 죽으면 박테리아가 증식하여 온갖 장기가 부풀어오르고, 풍선이 팽창하다가 폭발하는 것처럼 복부가 터지며 온갖 액체를 몸 밖으로 쏟아낸다.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할 때 몸에서 수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5퍼센트. 인체의 유기물질과 체내 수분이 함께 쏟아진 뒤 부패하면서, 지하의 창문과 벽을 넘어 골목 어귀까지 이토록 비극적인 냄새를 뿜어댄다. (본문 중)
책쓴이는 책 말미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린다. 죽음의 현장과 자주 마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깝고 소중한 사람의 죽음까지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나도 자연스레 우리 부모님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스물한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입관을 앞두고 아버지의 몸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은 한참이나 어려 보이는 자식들을 두고 가기엔 걱정과 아쉬움이 많이 남았나 보다. 장의사는 익숙한 손길로 아버지의 눈을 마사지하고는 눈을 감겨드렸다. 그때 아버지 나이 쉰 하나였다. 그의 몸을 물려받았으니, 나도 오래 살 것이란 희망은 품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는 얼마 전에 환갑을 넘겼다. 그 세대 여성들이 으레 그러하듯, 어머니도 젊을 때부터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인지 또래에 비해 몸이 약한 편이다. 어머니는 '내가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살겠니'라는 말을 종종 지나가듯이 한다. 그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그날을 상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 아버지의 일을 한 번 겪어봐서 장례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그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는 건 물론 아니겠지만. 그저, 그 날 어머니가 너무 외롭지는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덧. 전자책을 처음 써보았다. 이전까지 나는 종이책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평소에도 화면으로 글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 전자책이 생각보다 덜 불편했다. 다른 걸 생각할 여가가 없을 정도로 책에 깊이 빠져들기도 했다. 다만 꼼꼼히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 책을 전자책으로 읽으려면 좀 더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 전자책에 적응될 때까지는 이 책 같은 에세이나 가벼운 소설 정도만 읽는 게 좋겠다. 그리고 책에서 마음에 드는 글귀를 가져오려고 할 때, 그 글귀가 몇 페이지에 있었는지 정확하게 적을 수 없어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