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식,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들 중에,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지 않거나 짧게만 언급하고 지나가는 것들이 많았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그런 사건들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국민방위군 사건이나 보도연맹 사건, 한일 국교 정상화의 뒷이야기, 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학교에서 이런 것들을 자세히 가르치지 않는다는 게 아쉬웠고, 안제든 기회가 되면 우리 현대사의 가려진 이야기들을 청소년들과 함께 공부해보고 싶었다.
그 후로 한국 현대사의 대중교양서들을 몇 가지 찾아 읽었다. 하지만 이거다 싶을 만큼 좋은 책을 찾기가 힘들었다. 자료가 적게 실려 있거나, 청소년이 읽기에는 너무 어렵고 재미없거나, 역사를 보는 시각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한홍구 교수나 강만길 교수의 책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나는 그들의 책으로 한국 현대사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의 책은 MSG가 너무 강해서 청소년들에게 읽히기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하는 중에, 강준식의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제목대로 대통령들을 주인공 삼아 한국 현대사를 써내려간 책이다. 청소년들이 아무리 한국 현대사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역대 대통령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터이니, 책 내용에 다가가기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책쓴이가 기자 출신이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을 잘 정리해놓았다. 그래서 술술 읽힌다. 함께 공부한 청소년들도 다 함께 끝까지 읽었으니, 그들이 읽기에도 적당히 어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이 책도 좋은 역사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책쓴이의 기억에 의존해서 쓴 부분이 많고, 인용한 자료들도 객관성이 떨어진다. 대통령들을 평가하는 기준도 특별할 게 없다. 특히 경제정책이나 외교정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는 책쓴이의 전문성이 많이 아쉬웠다. 그러다 보니, 책의 빈틈을 메우거나, 책쓴이의 주장이 정말 그런지 따져보기 위해 자료들을 따로 잔뜩 찾아봐야 했다. 뜻하지 않게 자기주도적인 책읽기를 한 셈이다.
이 책을 읽은 청소년들과 독서록도 썼다. 그들 중에는 책을 읽고 나서 100% 잘 한 일만 있거나 100% 잘못한 일만 있는 대통령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사람이 꽤 많았다. 그들은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사건을 잘 이해하려면 여러 방향에서 살펴야 한다는 걸 깨달은 듯하다. 이 책 수업하는데 다섯 달이 걸렸는데, 그만한 시간을 쓴 보람이 있는 것 같다. 청소년들이 이 책을 통해 한국 현대사에 궁금증이 좀 더 생겼다면, 그리고 그 궁금증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자료를 더 찾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큰 기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