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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징쌤 Feb 05. 2022

'Instagramable'한 감상문을 쓰고 싶었다

사라 프라이어, <노 필터>

1. 인스타그램? 그걸 왜 써?

인스타그램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저런 걸 대체 왜 쓰지?'라고 생각했다. 그 때만 해도 '인스타 하는 사람들은 힙하다'라는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청개구리 같은 면이 있어서, 인스타그램을 쓰는 사람들이 나댄다고 느껴져서 이유없이 싫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관종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아질 쓸 줄 모르는 걸 가지고 다른 관종들이 지들끼리 노는 걸 보면서 배알이 꼴렸던 것 같다. 그 때만 해도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쉽다. 뭐든 일단 해보고 판단을 했어야 했는데.


어쨌든 좀 뒤늦게 인스타그램을 하기 시작했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에 처음 사진을 올린 날짜를 찾아보니 2014년 11월이더라.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페이스북 눈팅을 많이 하는데,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 페이스북에도 자동으로 사진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듣고 인스타그램을 처음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올리기 시작한 게시물이 벌써 600개가 넘었다. 대충 계산해보면 일주일 한 두 개씩은 꼭 올린 셈이다. 그 사진들을 보니 언제 어디서 뭘 하다가 그 사진을 찍었는지 새록새록 기억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인스타그램이 대충 사진 멋지게 찍어서 자랑하는 앱이라고 생각했다. 이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것이지만, 인스타그램은 사진을 통해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놓기도 하고 남들에게 보여주기도 하는 곳이었다. 


이렇게 인스타그램을 즐겨 쓰면서도 이 앱을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이걸로 다른 사람들은 뭘 하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샀다더라하는 소식 정도만 언젠가 주워들은 적 있다. 몇몇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를 모으고, 그 팔로워들에게 물건을 팔거나 어딘가로부터 물건을 협찬받아서 광고하는 것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뭔가를 해봐야겠는 생각은 안 해봤다. 나는 그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다른 사람들이 올리는 사진을 보며 그들의 삶을 구경만 하고 있다. 


2. #No_Filter

얼마 전에 <노 필터>라는 책을 읽었다. 인스타그램이라는 앱과 그 앱을 운영하는 회사의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놓은 책이다.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여러가지로 풀이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책에도 나오지만, 인스타그램이 초창기에 많은 인기를 얻었던 이유는, 인스타그램이 만든 필터를 쓰면 사진을 이쁘게 꾸밀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 때만 해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지금처럼 깔끔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터로 꾸민 사진이 '진짜'가 아니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필터를 쓰지 않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해쉬태그(인스타그램이 가장 먼저 개발했다고 한다. 덕분에 보고 싶은 주제의 게시물을 손쉽게 찾고 모아서 볼 수 있게 되었다)를 달기 시작한다. '#No_Filter'.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No_Filter'는 인스타그램 창업자들(케빈 시스트롬, 마이크 크리거)의 철학을 가장 잘 드러내는 해쉬태그인 것 같기도 하다. 인스타그램을 개발한 사람들은 회사의 미션을 '세상의 순간을 포착하고 공유하기(To capture and share the world's moments)'라고 정했다. 인스타그램 창업자들은 인스타그램을 큰 회사로 키우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이 진짜 원했던 것은 지구 방방곡곡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의 특별한 기억을 사진에 담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인스타그램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 담긴 앨범이 만들어질 것이다. 창업자들은 또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서 만나 자유롭게 커뮤니티를 만들어 소통할 수 있기를 원했고, 그 커뮤니티가 사람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문화로서 자리잡기를 바랐다. 


한편, 책쓴이는 인스타그램에 얽힌 이야기를 아무런 필터도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하겠다고 마음먹고 책 제목을 <노 필터>라고 지은 것 같기도 하다. 만약 그렇다면, 책쓴이의 의도대로 글이 쓰였는지는 한 번 따져볼 만하다. 아무 필터도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책쓴이는 인스타그램 초창기의 목표와, 그 목표에 따라 만들어진 커뮤니티를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책쓴이는 인스타그램의 편을 드는 한편 페이스북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글을 쓴 것처럼 내게 느껴진다. 그는 또한 이 인스타그램의 '에덴 동산'을 무너뜨린 것은 페이스북이 내민 10억 달러짜리 '선악과'였다고 보는 듯하다.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에 10억 달러에 인수되고 나서부터 인스타그램이 처음의 이상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3. 'Instagramable' in Facebook

책쓴이의 눈에 비친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는 사업에서의 경쟁을 곧잘 전쟁에 빗대었다.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의 목표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전자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언제 어디서 경쟁자가 나타나 페이스북을 위협할지 알 수 없으니 항상 긴장해서 앞서나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계속해서 주장했다. 주커버그는 사용자들이 페이스북에 쓰는 시간을 중요한 성공 잣대로 삼았다. 그래서 사용자들이 페이스북에 시간을 쓰는 것을 방해하는 경쟁자들은 무조건 이겨서 없애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만약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다면 페이스북이 가진 엄청난 돈으로 경쟁사를 사들인 다음, 페이스북 안으로 빨아들이거나 없애버렸다. 


그런 페이스북에 인수되었으니, 인스타그램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세상의 순간을 포착하고 공유'하도록 한다는 그들의 이상을 지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주커버그는 인스타그램의 끝없는 가능성을 높게 보았기에 무려 10억 달러라는 큰 돈을 주고 인스타그램을 인수했지만, 한편으로는 사용자들이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느라 페이스북에 시간을 덜 쓰게 될까봐 많이 걱정했다. 그래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어정쩡한 관계로 몇 년 동안 지냈다. 페이스북에 인수되고 나서 한 동안 인스타그램은 자기들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받기는 했다. 또한 페이스북의 여러가지 인프라와 자원도 어느 정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페이스북에 인수된 다른 회사들이나 페이스북 안의 여러 사업부와 비교했을 때, 그들만큼 많은 지원을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인스타그램은 몇 가지 멋진 성공을 만들어내며 꾸준히 성장했다. 인스타그램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같은 셀럽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그들을 통해 인스타그램이 원하는 사용자의 모습을 일반 사용자들에게 캠페인했다. 덕분에 인스타그램은 특유의 힙하고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오래도록 지킬 수 있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인스타그램은 유명 브랜드들이 인스타그램 플랫폼에서 광고를 할 수 있게 문을 열었다. 이 광고는 너무 잘 되어서 나중에는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 전체 수익의 30%를 만들어내는 데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2016년에 인스타그램은 '스토리'라는 기능을 더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스토리'를 즐겨 쓴다. 인스타그램 때문에 'Instagramable'이라는 낱말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이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을 만큼 멋진 장면' 정도로 옮길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instagramable'한 사진이 아니라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스토리'는 이런 상황에서 인스타그램 앱에 더해진 것이었다. '스토리'에 올린 게시물은 24시간 만에 사라진다. 덕분에 사용자들은 아름다운 사진만 골라 인스타그램에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은 '스토리'를 런칭하면서, 그 때쯤 페이스북의 강력한 경쟁자로 꼽히던 '스냅챗'을 밀어냈다. 이로써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이 1등 자리를 지키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이런 성공들을 바탕으로 인스타그램은 2018년에 월간 사용자 수 10억 명을 넘어서면서 SNS 업계에 길이 남을 성공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그 전까지 월간 사용자 수 10억 명을 넘긴 SNS는 페이스북밖에 없었다. 한 지붕에 거대한 플랫폼 두 개가 함께 자리잡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플랫폼 제국'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의 관계는 이 때부터 나빠지기 시작했다. 시스트롬과 주커버그의 갈등이 깊어졌다고 보는 게 좀 더 정확하겠다. 시스트롬은 주커버그로부터 인스타그램의 성공을 인정받고, 좀 더 큰 자율권을 받고 싶어했다. 반대로 주커버그는 인스타그램이 성장할 수 있게 많은 지원을 했고, 경쟁자들로부터 인스타그램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의 방침을 완전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페이스북은 주커버그의 왕국과 같았다. 시스트롬은 그 왕국 안에서 주커버그를 절대 이길 수 없었다. 결국 인스타그램의 두 창업자가 인스타그램을 떠나고, 페이스북 임원이었던 아담 모세리가 인스타그램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4. What if..

나도 책쓴이처럼, '세상의 순간을 포착하고 공유'한다는 인스타그램의 이상이 무너지게 된 것 같아 아쉽다. 만약 시스트롬이 페이스북의 인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의 이상이 이루어졌을까.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주커버그가 시스트롬에게 인수 제안을 했을 즈음에, 시스트롬은 회사를 운영할 돈이 없어서 여기저기에 투자를 부탁하러 다니고 있었다. 페이스북에 인수되기 직전에 몇 군데에서 투자를 받기는 했지만, 그 돈은 얼마 못 가 떨어졌을 것이다. 게다가 인스타그램을 본따서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까딱 잘못하면 그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났을지도 모른다.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에 인수된 덕분에 페이스북의 엄청난 자원을 바탕으로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이 어차피 어딘가에 인수되었어야 한다면, 페이스북 말고 트위터에 인수되었다면 어땠을까. 트위터는 페이스북보다 한 발 앞서 인스타그램에 인수를 제안했다고 한다. 게다가 시스트롬이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트위터의 창업자 잭 도시가 시스트롬에게 여러가지 도움을 주기도 했다. 시스트롬은 주커버그보다 잭 도시와 친했기 때문에, 만약 인스타그램이 트위터에 인수되었다면 페이스북에 인수되었을 때보다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사업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책에는 시스트롬이 트위터의 인수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 트위터가 페이스북보다 인수 금액을 더 적게 제안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시스트롬이 잭 도시보다는 주커버그를 더 나은 사업 파트너라고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페이스북이 트위터보다 훨씬 사업이 잘 되고 있다. 인스타그램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시스트롬이 사업 파트너를 잘 고르긴 한 것이다. 


시스트롬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형편이 괜찮은 편이었다. 스탠포드 대학 출신의 시스트롬은 학부생 때 이미 주커버그와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학부를 졸업하고 인턴을 할 때는 바로 옆자리에 잭 도시가 앉아 있었다고 한다. 이 두 사람 다 시스트롬을 좋게 보았던 것 같다. 이런 인연이 나중에 사업을 할 때까지 이어져 잭 도시는 인스타그램 초창기에 시스트롬의 멘토 역할을 했고, 주커버그는 10억 달러라는 큰 금액을 인스타그램에 배팅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시스트롬은 인스타그램을 만들기 전에 이미 훗날 IT 업계의 주역이 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김영준 작가는 <멀티팩터>에서, 사업가는 자신이 가진 자원을 박박 긁어모아서 써야 하며, 거기에 운까지 따라야 비로소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보면 시스트롬은 누구보다 나은 자원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 셈이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에 인수된 덕분에, 시스트롬은 자기가 원하는 사업을 할 기회를 꽤 오랫동안 얻기도 했다. 구글은 키홀이라는 회사를 인수해서 구글 맵과 구글 어스를 만들었다. 키홀의 창업자는 구글에 인수된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자율권을 빼앗기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그는 나중에 지도 기반의 증강현실 게임인 '포켓몬 고'를 개발했다). 유튜브 창업자도 유튜브가 구글에 인수되고 나서 비슷한 길을 걸었다. 실리콘 밸리에서 이런 사례는 하늘의 별처럼 많을 것이다. 그들에 비하면 시스트롬의 처지는 조금 더 낫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물론 그가 이런 결말을 원하지는 않았겠지만. 


5.인스타그램의 미래는 과연?

인스타그램은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10억 명 넘는 사람들이 쓴다고 하니 온갖 문제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서 남들의 잘 꾸며진 모습을 자신과 비교한다. 때문에 인스타그램을 쓰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이 낮아지거나 우울증에 걸린다고 한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 억지로 성형수술을 하거나, 무리해서 다이어트를 하거나, 빚을 내서 물건을 사거나, 짝퉁을 명품인 것처럼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10대들 중에는 이런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을 하는 사람까지 있다고 한다. 게다가 가상의 계정들을 만들어 팔로워를 늘려주고 돈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나아가서 인스타그램에서 비밀스럽게 마약을 사고 판다든지, 아동 성착취 사진을 공유한다든지 하는 범죄도 심심치않게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미 페이스북에는 이런 문제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2016년 미국 대선 때,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계정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게시물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여론을 조작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페이스북은 미국 정부로부터 꼼꼼히 조사를 받았다. 게다가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여러 회사들을 인수하면서 반독점금지법을 어겼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시스트롬이 떠나면서 인스타그램은 주커버그의 성장 철학을 받아들였다. 그렇기 때문에 인스타그램도 앞으로 페이스북이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많이 겪게 될 것이다. 시스트롬은 이 문제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해결책은 만들어내지 못했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이런 문제들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스타그램을 즐겁게 쓰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는 인스타그램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고, 그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내는지도 관심있게 지켜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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