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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징쌤 Dec 19. 2020

[연재] 청소년을 위한 <사피엔스> 댓글 달기 (10)

2장. 지식의 나무 part.7

역사와 생물학

[사피엔스가 발명한 가상의 실재의 엄청난 다양성 그리고 그것이 유발하는 행동 패턴의 다양성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 일단 등장한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했으며, 그 멈출 수 없는 변화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인지혁명이란 역사가 생물학에서 독립을 선언한 지점이었다. 인지혁명 이전에 모든 인간 종의 행위는 생물학의 영역에 속했다.] (p. 66)   


> 보통 역사 수업에서는 인류의 시간을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나눈다고 가르친다. 나도, 학생들도 여태까지는 그런가보다 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사피엔스>를 여기까지 읽고 나니, 인류의 시간을 단순히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라고 나눠버리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되는 것 같다. 역사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사피엔스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인지혁명 이전의 시간에 대해서도 공부할 수 있다면 사피엔스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 같다.


> '문화'라는 말은 온갖 곳에서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대중문화, 조직문화, 가족문화, 하위문화 등등 워낙 많은 곳에 쓰이다 보니, 얼핏 온갖 곳에 다 갖다 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문화'라는 개념은 그 의미를 딱 잘라서 새기기 참 어렵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호모 사피엔스가 만든 다양한 허구적 실체들, 그리고 그 허구적 실체들에 따라 만들어지는 행동의 패턴을 뭉뚱그려서 문화라고 말한다.


> 나는 유발 하라리 교수의 문화 개념 정의가 아주 마음에 든다. '허구적 실체의 다양성'이라는 말에 문화가 허구적 실체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허구적 실체를 만드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이 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행동 패턴이 허구적 실체에 따라 정해지며, 그 패턴 또한 시대마다, 장소마다, 상황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어렵고 복잡한 개념을 이렇게 쉽게, 게다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능력인 것 같다.


> 유발 하라리 교수는 책을 시작하면서,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길고 긴 물리학-화학-생물학 시대의 끄트머리에야 비로소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인지혁명이 일어나 호모 사피엔스가 허구적 실체와 문화를 발명함으로써 생물학의 시간과는 분리되는, 호모 사피엔스만의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나가게 되었다고도 했다. 그 이전까지는 생물학의 눈으로 호모 사피엔스의 삶을 해석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사피엔스가 어떤 허구적 실체와 문화를 만들어냈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허구적 실체와 문화가 어떤 역사를 만들어냈는지를 중심으로 사피엔스의 삶을 해석해야 한다.



[일대일, 십대십으로 보면 우리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침팬지와 비슷하다. 심각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개체수 150명이라는 임계치를 초과할 때부터다. 숫자가 1천~2천 명이 되면,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진다. (중략) 우리와 침팬지의 진정한 차이는 수많은 개인과 가족과 집단을 결속하는 가공의 접착제에 있다. 이 접착제는 인간을 창조의 대가(大家)로 만들었다.] (p. 67)   


> 사피엔스와 침팬지의 DNA에 담긴 유전 정보는 98.8% 겹친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는 그리 멀지 않은 사이인 것이다. 나는 유전 정보가 동물의 생각이나 행동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유전 정보가 그만큼이나 비슷하다면, 일대일이나 십대십으로 비교했을 때 사피엔스와 침팬지의 행동이 비슷할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만약 문화의 영향이 없었다면 나도 혼자 있을 때는 원숭이(침팬지라기엔 나는 덩치가 작아서)와 비슷하게 행동할 것 같다.


> 문제는 사피엔스가 여러 명 모였을 때이다. 침팬지는 50마리만 넘게 모여도 싸우거나 갈라서기 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피엔스는 50마리가 넘어서도 싸우지 않고 함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인지혁명이 일어나고, 사피엔스는 언어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인지혁명과 언어의 기능에 대해서는 벌써 여러 번 쓴 것 같다. <사피엔스>에 나오는 '언어의 기능' 세 가지는 외워두어도 좋을 정도로 중요하다.


> 사피엔스는 언어를 가지고 정보를 다른 동물들보다 많이 저장하게 되었다. 또한 눈 앞에 없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뒷담화(gossip)'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150명 정도까지 한 무리를 이룰 수 있다. 이 150명이라는 숫자를 발견한 '로빈 던바'의 이름을 따서 '던바의 수'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앞서 했다. 150명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관계 맺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150명 정도이기 때문이다.


> 언어의 역할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언어의 세 번째 기능은 '허구적 실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허구적 실체 덕분에 수천-수만 명의 호모 사피엔스들이 한 팀이 될 수 있다. 학생들에게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여러분의 학교 전교생은 약 1000명쯤 될 것이다. 만약 학교에 침팬지를 1000마리 풀어놓으면 어떻게 될까? 여러분처럼 선생님 말 잘 듣고, 시간표 잘 지키고, 별다른 문제 일으키지 않고 학교를 잘 다닐까?'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보면 허구적 실체가 사피엔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좀 더 실감이 난다.



[인지혁명 이후 생물학과 역사의 관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생물학은 호모 사피엔스의 행동과 능력의 기본 한계를 결정한다. 모든 역사는 이런 생물학적 영역의 구속 내에서 일어난다.
2. 하지만 이 영역은 극도로 넓기 때문에, 사피엔스는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할 수 있다. 사피엔스는 픽션을 창조하는 능력 덕분에 점점 더 복잡한 게임을 만들었고, 이 게임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더욱 발전하고 정교해진다.
3. 결과적으로, 사피엔스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이들의 행동이 역사적으로 진화해온 경로를 서술해야 한다. 우리가 생물학적 속박만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월드컵 경기를 중계하면서 선수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보다는 운동장의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는 라디오 아나운서와 다를 바 없다.] (p. 68)


> 허구적 실체가 <사피엔스> 전체를 꿰뚫는 이야깃거리라고 한다면, 여기 나오는 1번-3번까지의 내용은 이 책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미리 보여준 셈이다. 사피엔스가 아직 극복하지 못한 한계는 '모든 사피엔스는 결국에는 죽는다'는 것이다. 사피엔스는 언젠가부터 죽음을 무척 두려워하게 되었다. 죽음에 대한 온갖 허구적 실체를 지어냈고, 죽음을 피하기 위해 온갖 금기를 만들었다. 그 금기는 오랫동안 사피엔스 문화의 핵심이 되어왔다.


> 한편, 사피엔스는 죽음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고 싶었다. 사피엔스는 때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피엔스와 싸우기도 했다. 그런 마음에서 사피엔스는 다양한 도구들을 만들어냈다. 그 도구들은 삶을 더 편리하게 해주었거나, 전쟁에서 무기로 쓰이거나 했다. 죽음을 최대한 멀리 미루고 싶은 마음과 누군가를 더 쉽게 죽이고 싶은 마음이 합쳐져 사피엔스의 기술이 발달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 모든 사피엔스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머리에서 잠시만 지워보자. 그러면 살아 있는 동안 알아보고 싶고 해보고 싶은 온갖 일들이 떠오른다. 나는 읽고 싶은 책도 많고, 보고 싶은 영화도 많고, 만나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다. 특히 회사를 차려서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이끈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고 싶다. 이런 호기심과 활동 욕구 또한 인류가 이만한 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인 것 같다.


> 호모 사피엔스를 이해하려면, 호모 사피엔스에게 생물학적 한계가 있다는 걸 절대 까먹으면 안 된다. 그러면서도 호모 사피엔스가 만든 문화가 바뀌어온 과정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생물학적 요소와 문화적 요소는 지금도 사피엔스에게 큰 영향을 준다. 생물학적 진화의 기억은 사피엔스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고, 문명의 진화의 기억은 사피엔스 뇌의 배선을 바꾼다고 한다. 우리 각자가 호모 사피엔스이니, 이런 생각 방식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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