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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징쌤 Dec 08. 2020

[연재] 청소년을 위한 <사피엔스> 댓글 달기 (8)

2장. 지식의 나무 part. 5

[효과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남들이 그 이야기를 믿게 만드는 게 어렵다. 역사의 많은 부분은 이 질문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어떻게 한 사람이 수백만 명에게 신이나 국가에 대한 특정한 이야기, 혹은 유한회사를 믿게 만드는가? 그러나 일단 성공하면, 사피엔스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서로 모르는 사람 수백 명이 힘을 모아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강이나 나무, 사자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고 치자. 그랬다면 국가나 교회, 법체계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pp. 58-59)


> 이야기를 짓는 일 정도는 호모 사피엔스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대여섯 살쯤 되는 어린 아이들만 해도 쉴새없이 떠들어댄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어른의 눈으로 볼 때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자기들끼리는 말이 통하는 걸 보면 아이들은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나름대로 세상을 그려내는 것 같다. 어쨌든 아이들을 보면 소리 언어만 배워도 짧은 이야기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 하지만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에는 힘이 없다. 그 이야기를 믿고, 그 이야기대로 살아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믿을 때 그 이야기에 힘이 실린다. 여러 사이비 종교 교주들이 하는 이야기를 보면 이 안 된다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 집단(collective)을 이루게 되면 적어도 그 집단 안에서 만큼은 교주의 이야기가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교주의 이야기를 사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책, 건물, 옷 같은 걸 만들기도 한다.


> 크게 보았을 때, 문명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사이비 종교가 터를 잡고 세를 불리는 과정과 다를 게 별로 없을 것 같다.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많아지고, 하나의 이야기를 따르는 하나의 집단이 생기고, 자신들이 믿는 이야기의 내용대로 세상의 모습을 바꾼다. 그렇다면 사이비와 사이비가 아닌 것을 가르는 기준을 누가, 어떻게 정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것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싸워왔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이야기의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중략) 이런 이야기의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이 창조한 것을 학계에서는 '픽션' '사회적 구성물' '가상의 실재'라고 부른다. 가상의 실재란 거짓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중략) 거짓말과 달리 가상의 실재는 모든 사람이 믿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공통의 믿음이 지속되는 한, 가상의 실재는 현실세계에서 힘을 발휘한다.] (p. 59)   


> 우리는 이야기가 여러 개 겹쳐져서 만들어진 허구의 세상에서 살아간다. 가족, 친족, 민족, 국가, 학교 등등 우리가 속해 있는 집단에는 집단 안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이야기가 있다. 허구적인 이야기들이 겹쳐져서 만들어진 그물을 '이야기의 네트워크'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리고 '이야기의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허구를 '허구적 실체'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fictional entity'라고 한다.


> 이 개념은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다. 내가 어떤 허구적 실체를 따르는 집단 안에 있는지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집단이 제시하는 가치를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기보다는, 그 가치는 어떤 이야기들로 뒷받침되는지, 그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이야기는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이야기로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 등등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생각들이 쌓이고 나면, 나중에는 자신의 집단을 한 발 더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새로운 허구적 실체를 지어낼 수 있을 것이다.


> 누군가 우리에게 <사피엔스>가 무슨 내용이냐고 물으면 '사람이 어떻게 허구적 실체(fictional entity)를 만들어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라고 말하면 될 정도로 이 책에서 허구적 실체 개념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가 앞으로 이 책에서 읽을 내용 대부분은 사람이 여태까지 만들어낸 다양한 허구적 실체들에 관한 것이다.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한쪽에는 강, 나무, 사자라는 객관적 실재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신, 국가, 법인이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상의 실재는 점점 더 강력해졌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강과 나무와 사자의 생존이 미국이나 구글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자비에 좌우될 지경이다.] (p. 60)   


> 학생들 중에는 허구적 실체도 그냥 거짓말 아닌지, 그러면 사람은 거짓말을 진짜라고 믿고 살고 있으니 산다는 게 얼마나 의미없는 일인지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 허구적 실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다. 자기가 여태껏 진짜라고 믿고 살아온 것들이 모두 다 언젠가 사람들이 지어낸 것들일 뿐이라고 하니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질 만도 하다.


> 하지만 허구적 실체는 단순히 거짓말이 아니다. 인간은 허구적 실체를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집단을 만든다. 심지어 허구적 실체는 인간이 물질세계를 꾸미고 만드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불교'라는 허구적 실체를 믿는 사람들은 절을 짓고, '개신교'라는 허구적 실체를 믿는 사람은 교회를 짓는다. 생태주의자(ecologist)들은 도심 한복판에 공원을 열기를 바라지만, 집값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공원보다 아파트를 짓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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