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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징쌤 Oct 15. 2023

영업 사원의 명절 선물

주기도 애매하고 안 주기도 애매한

올해 초에 우리 회사 영업팀에 부장급 직원이 한 명 새로 왔다. 영업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영업 사원으로서의 자세 같은 것에 대해 배울 게 많다(이에 대해서 언젠가 한 번 적어보려고 한다). 이 직원이 들어오고 나서 회사에서 새롭게 시작한 일이 하나 있다. 회사 입장에서 신경 써야 하는 사람들에게 명절 선물을 보내는 것이다. 여태까지 우리 회사는 명절 선물을 따로 보내지 않았는데, 이 직원에게는 그게 퍽 이상하게 보였나 보다. 이 직원의 가이드에 따라 선물 받을 사람들 리스트를 만들고, 어떤 선물을 보낼지 정하고, 선물을 주문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보냈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애를 많이 썼지만, 한편으로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재미있기도 했다. 


우리 회사의 중심 비즈니스는 외국계 IT 솔루션 제조사와 파트너 계약을 맺고, 그 솔루션을 한국 시장에 파는 것이다. 그에 따른 여러 가지 기술 지원 업무를 통해서도 매출을 낸다. 그러다 보니 제조사의 한국 지사 직원들과 협업할 일이 많다. 특히 그들은 어느 파트너사와 함께 일할지 고를 수 있기 때문에, 이들과 관계를 잘 맺어놓는 게 우리 사업에도 유리하다. 아무래도 같은 조건이라면 조금이라도 친하거나 편한 사람과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테니 말이다. 그래서 주요 고객사들에서 우리 제품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보낼 때, 제조사의 직원들에게도 함께 선물을 보냈다. 


어느 날 제조사의 직원을 만나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문득 궁금해져서. 우리 회사가 명절에 보냈던 선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에게 물었다. 나는 가볍게 물은 것이었는데, 그는 꽤나 진지하게 대답했다. 본인도 일 때문에 선물을 보내봐서 우리 회사가 어떤 마음으로 선물을 보냈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선물을 받는 입장에서는 참 난감하다고 했다. 선물을 받으면 그 대가로 뭔가 해줘야 할 것 같고,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관계가 나빠질까 봐 걱정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선물로 기프티콘이라도 받으면, 나중에 상대에게 어떻게 보답하는 게 좋을지 고민했던 적이 있다. 더군다나 일 때문에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선물을 받았으니 신경이 훨씬 더 많이 쓰였을 것 같다. 


그분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본인이야 우리 회사와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왔으니 고마운 마음으로 선물을 받으면 되지만, 자신이 경험해 본 바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었다고 했다. 예컨대, 선물을 그만 주게 되는 때가 분명 올 텐데, 그럴 때 누군가는 왜 선물을 주다가 안 주냐고 따진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여러 파트너사들이 보내는 선물들을 두고 어떤 것이 낫고 어떤 것이 별로인지 비교하기도 한단다. 만약 그런 사람이 선물 때문에 파트너사를 차별하게 된다면 이 작은 업계에 아주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런 결과를 미리 막기 위해서 다른 제조사에서는 선물을 받지 말자는 규칙이 만들어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이런 것도 못 받게 하면 무슨 맛으로 일을 하라는 거냐며 그 규칙에 화를 내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좋은 마음으로 보낸 선물 때문에 정말 별 일이 다 생기는구나 싶어서다. 특히나 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 업무적인 지위 때문에 만들어진 영향력과 개인적인 영향력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선물을 두고 큰 오해를 하게 될 것 같다. 온갖 갑질도 결국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일 텐데, 선물이 그런 갑질의 빌미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이 내용은 앞으로 사회 생활하면서 나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누군가가 나에게 자주 연락하거나 잘해주려고 한다면, 그것은 나라는 사람과 잘 지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업무 상 가지고 있는 포지션 때문이라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실수를 안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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