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썬더볼츠' 리뷰
1. 마블의 스토리텔링
아무래도 영화는 히어로물인 만큼 히어로 이야기를 한다. 요즘 트렌드에 PC에 관한 변화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히어로를 구성하고 대하는 태도 자체가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아예 선언해 버린 것이 인상 깊었다.
'미완한 사람들'
먼저 이전 세대 어벤져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그들은 인류를 지키겠다는 대의를 위해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비즈니스적으로 협업했다. 그 활약상은 민간인이 도전해 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규모의 일이었고, 그래서 대중은 연예인 보듯 그들을 열망하게 되었다. 전지구적 규모로 활동할 정도로 뛰어났고, 선망할 만했고, 그러면서 보통 대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벤져스는 대중으로부터 본인들이 어떤 이미지인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런 고생을 영화를 보는 대중은 멋진 액션과 더불어 감상하며 히어로들의 팬이 된다. 영화 속 대중도 처음에는 심지어 히어로를 비하하기도 하지만 영화 막바지에 가면 그들이 인류의 구원자였음이 드러나고, 인정을 받고, 사람들의 환호갈채를 받는다. 사람들의 열광, 관심, 이런 것들을 어벤져스가 '원한다'라고 표현한 적 있나? 결코 없다. 그들은 말 그대로 대중이 이전까지 원했고 상상했던 스테레오 타입의 히어로들이었다.
반면 이번 영화의 New Avengers(썬더볼츠)의 멤버들은 어떤가? 저마다의 개인적 결핍이 있고, 전과가 있고, 성격이 안 좋고, 끊임없이 실수를 한다. '블랙 위도우'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같은 히어로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들이다. '우린 쓰레기들'이라면서 스스로를 비하하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것뿐만 아니다. 일반 사람처럼 욕망에도 솔직하다. 환호받고 박수갈채를 받고 싶다고 말하는 한물 간 슈퍼 솔저의 속내는 초라한 듯 보이지만 낯설지 않다. 게다가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정말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욕을 먹어야 할 못된 일들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원하는 고결한 히어로가 되지 못한 그들은 민간인, 즉 우리와 닮아 있다. 그래서 엘레나가 아빠에게 '언니를 잃었을 때 당신이 필요했다'라고 말하는 순간에, 또 '매일 앉아서 폰을 보고, 내가 했던 못된 짓들을 곱씹고, 일을 하고, 술을 마시고, 그런 생활이 반복된다'라고 말했을 때 눈물을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엘레나가 언급했듯 '우리는 모두 혼자'이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히어로의 지위가 일반인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영화 속 대중은 여전히 히어로들에게 박수를 치지만 사실 그건 예전처럼 그 '어벤져스'에게 전하는 존경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보답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동안 고결하고 신성하게만 그려지던 히어로들에게도 미완하고 미숙한 면이 있음을 부각하고 그럼에도 그들이 부단히 노력했으므로 박수를 보내는 정도로 이야기를 마무리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그렇게까지 희소하지도 않다. 어찌나 인간 실험을 많이 하고 어디에서 특이한 일을 겪어 히어로들이 된 건지, 점점 얼굴 외우기도 힘들 만큼 많아지는 중이다. 심지어는 초차원을 넘어 다른 멀티버스에서도 지구로 온다. 그 때문에 어벤스 저작권을 빼앗길까 전전긍긍해야 하고, 예전의 독보적이었던 어벤져스를 기억하는 사람들로부터 능력과 자질을 의심받게 되니 히어로들도 살기가 척박해지는 것이다. 이제는 능력 1순위, 2순위를 매길 수도 없을뿐더러 그럴 이유도 없어졌다. 그렇다면 히어로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번 영화가 그 대답의 시작이었다고 보는데, 각자의 존재와 개성, 그것으로 하여금 협동의 의미를 더해 어려운 상황을 헤쳐가는 히어로들의 모습은 수많은 인간들과 몸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를 보는 것처럼 애틋하게 보였다.
결국 마블은 사람들이 히어로를 사랑하게 만들 모양이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히어로에게 우리 자신을 투영하게 해서 심리적으로 가깝게 느끼도록 만든 시도가 인상 깊었다. 네이버 관람평을 보니 꽤 효과도 있는 것 같다. (해외 반응도 궁금하긴 하지만 서치 해볼만큼은 아닌 관계로 생략) 거기에 확장된 관점까지 더했다. 마치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라고 말한 영화 라따뚜이처럼, '우리 모두가 서로의 삶에서는 히어로가 될 수 있다'라고 은유한 것이다. 마블은 히어로물이 쏟아져 나옴에 따라 액션과 능력으로만 인기를 끌기에는 힘들어진 이 장르에 기존 관습과는 다른 스토리텔링으로 새로운 바람을 불어왔다. 더 이상 히어로는 멋있기만 하지 않다. 그들도 우리처럼 아프고 괴롭고 슬프고 외롭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이다. 그들을 응원하는 건 곧 우리 자신을 응원하는 셈이다.
2. 히어로? : 밥이 만들어낸 '고통이 끝없이 이어지는 방'
주요 플롯에 대해 좀 더 깊이 이야기해 보려면 '밥'이라는 인물을 알아야 한다. 밥은 가정 폭력을 겪고 마약 중독자가 된 비운의 인물이다. 마약을 싼 값에 사려고 동남아시아를 떠돌다가 우연히 '스탠리 프로젝트'에 참여해, 본인 내면의 부정적인 부분이 극대화될수록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능력을 갖게 되었다. 결국 맹점은 분노해야 히어로가 되는 헐크처럼 내면의 공허가 극대화되어야 그 능력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결핍, 모자란 것에 집중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영화들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내면에서의 불화를 묘사한다. 밥이 만들어낸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방'은 이전에 히어로들이 각성하려고 무의식 상태에 빠졌던 것과 아예 다르다. 단순 장면일 뿐이었던 것과 달리 무의식의 범위와 규모가 훨씬 크다. 시간과 관계없이 상처받았던 기억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밥의 '사람들을 공허로 만드는 능력'에 의해 엘레나 또한 자신의 무의식에 잠긴다. 그러다 찾아낸 밥은, 본인에 의하면 '가장 안전하다'라고 하는 방에 앉아있다. 그 광경을 보고 소름 돋는 기시감을 느꼈다. 그게 바로 사람들이 그토록 환멸 내는 회피형들의 무의식 속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무의식을 이 정도 수준까지 묘사해 낼 수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내면에서 겪는 외로움, 공허 등 어려움에 대해 인간이 지금까지 깊이 고민한 흔적일 것이었다.
자신을 집어삼킨 부정적인 밥을 폭행하는 또 다른 밥 장면 또한 눈여겨봐야 한다. 부정적인 밥은 '감정적 자아', 인간의 모습을 한 밥은 '이성적 자아'라고 볼 수 있는데 이성적 자아가 감정적 자아를 억누르고 살피지 않아서 감정적 자아가 폭발한 것이고, 그것이 자신을 지배하여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 이성적 자아가 분노하여 둘이 치고받는 상황으로까지 연출된 것이다. 한국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내면의 불화'이다. 상업 영화에까지 소재가 진출한 걸 보니 전인류적 문제인가 보다. 엘레나를 비롯한 썬더볼츠 멤버들이 달려들어 이성적 자아를 끌어안고 막아 세우는 장면은, 내면의 불화 해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감정적 자아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이 밥 내면에 있어도 우리는 언제나 너의 곁에 있을 것이라는 위로와도 같다.
마블은 이번 영화로 '히어로'의 개념을 넓혔다. 예전에는 외부 세계에서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사람이 히어로였다면 이제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내는 일 또한 히어로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과제라고 표방한 것이다. 감정적 자아를 때리는 밥의 이성적 자아를 말리기 위해 썬더볼츠 멤버들이 끌어안는 장면은, 사실 타인이 누군가의 무의식에 그렇게까지 깊이 들어가 볼 수는 없어 판타지적이긴 했지만, 당신과 우리 모두가 겪는 내면 불화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와닿아 뭉클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것이 히어로로서의 사명감 때문이었던 게 아니라 가까운 사람을 구하고 싶은 친구들의 마음이었어서 그 순간에는 그들이 정말 가깝게 느껴졌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얼 앳 올 원스’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무의식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라 그런지 정신없이, 또 이런저런 것들이 섞여서 어지러울 정도로 꽉 찬 것처럼 연출되는 듯하다. ‘상상의 힘을 빌려 무엇이든 가능한 영역‘인 것처럼 묘사되는 것 같기도 한데 그런 매력이 영화라는 매체를 만나 극대화될 때 짜릿하다. 인류는 안으로, 또 밖으로 얼마나 뻗어나갈 수 있을까? 전지구적 팀플이 모쪼록 오래 지속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3. 앞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내고 나니 질문 하나가 남는다. 모두가 소중하고 모두가 개성 있고 모두에게 사정이 있으니까, 그 말은 우리 모두가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말인데, 모두가 히어로라면 그걸 콕 집어 히어로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히어로'라는 개념의 확장이 시작되었고, 그걸 물려받은 히어로들은 대부분 이전 어벤스 세대의 인간 용병이나 실험의 피해자들이다. 그 잔해 속에서 새로운 씨앗이 싹튼 것인데 그것이 어떤 모양으로 커져나갈지는 계속 지켜봐야 할 듯하다.
마블은 상업 영화인만큼 대중의 니즈를 따라가겠지.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볼 수 있다. 대중이 원하는 건 무엇인가? 이전에는 우리를 거대한 위협(ex. 전쟁, 외계인)으로부터 지켜줄 압도적인 존재를 원했다. 그러나 그런 위협이 더는 예전만큼 두렵지 않아 진 지금, 대중은 어떤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하는가?
이번 영화를 통해 마블이 포착한 최근 대중의 가장 큰 두려움이자 고통은 '내면의 불화'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철학적이고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일이라서 다들 알지 못할 어려운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마는 걸 텐데 그걸 영상으로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싶어 놀라우면서도 반가웠다. 나도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글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표현해보고 싶은 강한 열망이 생겼다. 좋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