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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어썸머 Feb 07. 2024

냄비와 그릇을 비우면 달라지는 것

가벼운 주방으로 시작하는 미니멀라이프

신혼 초에 당연히 있어야 한다 생각하고 샀던 가전제품인 전기밥솥을 2년쯤 사용하고 비웠다. 세척의 번거로움과 좁은 주방을 더 좁게 만드는 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줄곧 7년 가까이 압력밥솥만 써왔는데 이제 압력밥솥마저 버거워졌다. 이유는 단순하다. 무겁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1년 동안 미국에서 일하며 지냈던 적이 있다. 미니멀라이프를 제대로 실천하며 살았던 유일한 시기이기도 하다. 냄비 1개와 프라이팬 1개로 모든 음식을 다 해 먹었다. 1년만 살다 떠난다는 그 마음 때문에 뭐든 가볍고 저렴한 것을 구매했고, 최대한 '사지 않는'쪽을 선택했다. 정말 내게 필요한 것만 소유했고, 1년 동안 나와 함께 했던 물건들은 큰 캐리어백 하나에 충분히 다 들어갔다. 그때 깨달았다. 내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캐리어 1개의 양이면 충분하다고.


미국에서 1년이라는 정해진 시간은 내게 저절로 소비를 절제하게 만들어주었다. 대략 45억 년으로 추정되는 지구의 나이에 비하면 인간의 일생은 짧고 짧은 찰나의 순간이다. 이렇게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1년이나 100년은 거의 같은 시간이다. 하지만 왜 1년과 내 남은 인생을 다르게 생각하며 살았을까.


아마 미국에서의 1년은 정해진 기간이지만, 내 남은 인생은 알 수 없기에 무한하다 생각했던 것 같다. 당장 내일 끝날 수도 있는 유한한 삶인데 말이다. 내 남은 삶도 임의로 정해버리면 무한하고도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졌던 시간들이 유한하고 유의미한 시간으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난 내 남은 인생이 50년이라고 정했다. 40여 년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처럼 남은 시간도 순식간에 지나갈 수 있다. 40여 년을 살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시간의 가속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불필요한 물건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며 살 수는 없다. 필요한 것만 최대한 적게 소유하면 그것을 관리하고 소비하는 시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인간은 상당히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쓴다. 멋진 물건을 사기 위해 시간을 쓰고, 생활에 편리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도 시간을 쓴다. 시간을 줄여주는 물건을 사기 위해서도 시간을 쓸 정도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수많은 편리한 인공물들을 소유하고 있다. 단지 더 새로운 것이 탐날 뿐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소비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면 허무하지 않을까. 정말 중요한 건 내 머릿속에, 내 마음속에만 채울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한 것들을 위해 시간을 써야 내 남은 시간들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압력밥솥이 버겁게 느껴지던 순간, 냄비밥이 떠올랐다. 냄비 1개와 프라이팬 1개로도 1년을 충분히 즐겁고 유익하게 잘 보냈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오랜만에 냄비밥을 지었다. 압력밥솥만큼 맛있게 지어진 밥을 먹으며, 내가 왜 그동안 밥솥을 고집했을까 싶었다.


결혼을 하고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종류의 냄비와 그릇을 들였지만, 결국 버거운 짐이 되었다. 그래서 자주 쓰지 않았던 것들을 모두 비워냈다. 냄비와 그릇들의 개수가 줄어드니, 자주 세척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만큼 주방이 항상 깨끗해졌다. 먹고 바로 정리하고 설거지하는 부지런함도 생겼다. 소유한 것이 적으니 관리하는 게 수월해졌다.


내 마음에, 내가 머무는 공간에 불필요한 것들이 많을수록 불필요한 에너지를 써야 한다. 물론 사람마다 필요한 냄비의 크기와 개수는 다르다. 수많은 종류의 다양한 냄비들을 능수능란하게 잘 다루고 관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의 냄비도 버거운 사람이 있다. 각자에게 맞는 크기와 개수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주방을 떠올렸을 때 불편한 감정이 앞선다면 비우는 게 좋다. 없어도 생각보다 더 잘 살아진다. 주방이 가벼워지면 일상이 가벼워진다. 일상이 가벼워지면, 인생이 가벼워진다. 내게 소중한 것들을 돌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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