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어썸머 Feb 08. 2024

우리 집에 책장이 없는 이유

미니멀리스트의 책장 없는 집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방에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구는 바로 책장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늘 책을 곁에 두고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아이의 공간에 커다란 책장을 두고 전집을 가득 꽂아둔다. 요즘엔 거실에 책장을 두는 집도 많다. 이렇게 책이 집에 한가득 있으면 책을 좋아하는 아이에겐 천국과도 같겠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 책장은 그저 장식장일 뿐이다.


우리 아이도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내가 책을 읽어줄 때만 책을 본다. 혼자 책을 읽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내가 매일 책을 곁에 두고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 아이는 그저 '엄마가 좋아하는 일'일뿐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글도 잘 읽고 영화 자막도 빠른 속도로 읽는 편이라 혼자 책을 읽는데 어려움은 없지만 혼자서는 도무지 읽히지 않는가 보다. 그래서 강요하지 않고 기다려주고 있다. 아이가 10대가 되기 전까지는 꾸준히 매일밤 내가 책을 읽어줄 생각이다. 나와 독서하는 시간이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이면 그걸로 됐다 생각한다.


우리 아이의 독서가 이렇다 보니, 몇 권 없는 아이의 책은 온 가족이 함께 잠자리에 드는 안방에 뒀다. 아이방에 책장을 두니 자리만 차지하는 것 같아서 과감하게 없애버렸다. 언젠간 읽겠지 싶어서 비우지 않았던 전집들도 비웠다. 교육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엄마인 내가 더 아쉬웠던 전집들이었지만, 아이는 모험이야기를 좋아하고, 전쟁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지식 탐구를 위한 목적으로 책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아이에게서 책은 더 멀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늘 재미있고, 늘 흥미로워야 한다. 그러다 보면 궁금한 것도 책을 통해 찾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한참 타이타닉호에 빠져서 관련 다큐멘터리만 찾아보던 아이에게 "타이타닉호 침몰사건이 있던 시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있는데, 도서관에 가볼래?"하고 호기심을 자극해 보았다. 평소 도서관 가자고 하면 시큰둥하게 따라나서던 아이였는데, 그날은 본인이 앞장서서 설레는 발걸음으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이가 요즘 관심 있어하는 이야기를 다룬 책이라면 얼마든지 흥미를 가질 수 있는데, 왜 내 기준으로 책을 고르고 읽게 했을까 싶었다. 책을 통해서 얻는 지식에만 초점을 맞추니 독서의 즐거움이라는 본질이 흐려졌었다. 독서는 그 자체로 즐거워야 한다. 독서로 즐거움을 맛보게 되면 자꾸 책을 찾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인생의 멋진 길잡이를 만나게 된다. 살기 위해 독서를 하게 되는 것이다. '잘' 살기 위해.


단순히 지식 축적만을 위한 목적이라면 책이 아닌 영상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사고력은 전혀 키울 수가 없다. 작가가 수없이 많은 날을 공들여 쓴 문장들을 자신만의 속도로 이해하고 생각하는 행위들을 전혀 할 수가 없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지식과 지혜는 그저 바람이 불면 날아가버릴 모래알 같은 지식일 뿐이다. 결코 바위처럼 단단한 지혜가 되지는 못한다.


몇 권을 읽었는지보다, 한 권을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중요하다. 집에 책이 아무리 많아도 수동적인 독서를 한 책들은 유튜브 영상과 다를 바 없는 책들이다. 차라리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검색하면 바로 찾을 수 있는 유튜브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책은 다른 물건들보다 집에서 많은 면적을 차지한다. 무게로 따져도 웬만한 가구보다 무거울 것이다. 그 많은 책들이 우리 가족에게 유의미한 귀중한 책들인지, 그저 자리만 차지하는 짐인지는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나는 평생 여러 번 다시 보고 싶은 책만 구매해서 거실의 잘 보이는 곳에 두고 틈날 때마다 펼쳐본다. 다시 읽을 때 원하는 부분을 바로 찾을 수 있도록 책에 표시를 하면서 독서를 한다. 그래서 집에 둔 책은 깨끗한 책이 없다. 나만의 흔적들이 가득한 책들뿐이다.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던 '벽돌책'들도 '북클럽' 운영하며 하나씩 읽어나가고 있다. 읽어보니 그리 어렵지 않은 내용인데, 두께에 압도되어 시작을 못했던 것이었다. 하나씩 독서를 끝낼 때마다 아이에게도 간략하게 이야기해 준다. 올해 9살이 되는 우리 아이는 '사피엔스', ', , ', '코스모스' 대한 내용을 대략적으로 이해한다. 그만큼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할  있는 내용이라는 반증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억지로 파고들지 않고 가볍게 넘겼다)


나는 우리 집 책장을 도서관에 두었다. 집에 책장이 없다 해서 독서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책장에 책이 가득 꽂혀있다고 해서 저절로 독서를 즐기게 되는 것도 아니다. 수만 권의 책이 가득 꽂혀있는 도서관 덕분에 굳이 우리 집 안에 그 많은 책을 두지 않아도 된다. 도서관에 가야 하는 수고로움 덕분에, 읽어야만 하는 지정된 그 시간 덕분에 내게 주어진 책이 더욱 귀중해진다.


수만 년 동안 동물과 달리 인간이 행한 위대한 가장 위대한 일이 바로 '책을 만들고 읽는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동물이 되었다. 우리에게만 주어진 이 훌륭한 행위인데 왜 머뭇거리는가. 독서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엄청난 특권이다.


(*읽고 싶은 신간도서는 도서관의 신간도서 신청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신청해서 받아본다. 신간도서를 읽고 여러 번 읽고 싶은 마음이 들면 구매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냄비와 그릇을 비우면 달라지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