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앨리스 W Jun 29. 2024

고딩 엄빠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들, 이성에 관심을 가지다

"엄마, 고딩엄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식탁에서 느닷없이 고등학생인 큰아이의 입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순간 숨이 턱 막히며 얼마 전 학교에 상담을 갔다가 담임선생님께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아이가 최근에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 같다고.

우리 아이가 여자아이들에게 꽤 인기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아이는 외고에 다니는지라 여학생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평소 TV도 안 보는 애가 고딩엄빠를 어떻게 알지? 진짜 여자에 되게 관심 있나?'


어떻게 대답해야 아들이 이성 친구에 대한 관심을 끊고 학업에 정진하도록 유도하고

더불어 엄마의 이미지도 쿨 하고 멋진 어른의 모습으로 임팩트를 줄 수 있을까. 

그렇게 눈치 보며 고민하기를 몇 분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이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냐. 

이럴 땐 그냥 직진이다. 솔직하게 까자.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고 

지금은 한 가지에만 집중해도 목표를 이루기가 힘들고 어렵다. 

더구나 자신도 책임지지 못하는 시기에 고딩엄빠라니 말도 안된다.

엄마는 네가 이 시기에 또래들이 하는 평범한 고민들을 하면서, 네 인생을 만들어 가는 데 전력을 다했으면 좋겠다. 


대충 저 정도의 내용으로 두루뭉술하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돌아온 정적. 

그래, 얘도 실망스럽겠지. 예상 답안이랑 되게 비슷했으려나. 

내가 생각해도  창의력이라고는 일도 없는 너무 뻔한 말이라 실망스러웠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더 좋은 답은 없었는지 계속 복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야 적당히 농담처럼 진담인 듯 유머러스하게 넘어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뒷북일 뿐이다. 

 

솔직히 이전에는 중 고등학생들 이성교제에 대한 생각은 찬성에 가까웠다. 

예쁘고 풋풋한 10대, 그 좋은 시기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해 보면 좋지 않은가. 

이성친구도 사귀어 예쁜 연애도 해보고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 순정만화처럼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아닌가. 

좀 더 가자면...... 나이 들어 만나면 생각이 너무 많아서 순수한 사랑을 하기가 어렵단다. 

뭣도 모를 때 만나 사랑하는 게 찐사랑일지도.   


허나, 내 아이가 되고 보니 오픈마인드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었다. 

담임 선생님의 이성교제를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만 떠오르고 내 아이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면 당장 뭔가 큰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머릿속에 경고등이 쉼 없이 울려댔다. 

  

고등학생 커플이 사귀다가 헤어지는 경우가 생기면 특히 남자아이가 큰 타격을 입는다고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우리 아이들과 그 친구들을 쭉 지켜본 바로는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에 비해 뭐랄까 멘털이 약하다고 해야 하나.. 약지 못하다고 해야 하나.. 바보 같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야무진 여자애들에 비해 상당히 부실한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사귀다가 헤어지더라도 여자아이들은 쿨하게 이별을 받아들이고 본업으로 돌아가 아무 일 없었던 듯 자신의 공부에 몰두한다고 한다. 학교 생활도 학원 생활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지만 남자아이들을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질척이고 헤매느라 공부는커녕 식음을 전폐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한다. 

또한 요즘 학생들은 연애하면 스킨십도 하기 때문에 잘못 걸리면 학폭으로 한동안 고생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고등학교 3년 금방 가는데 부족한 시간에 연애라니.   

하필이면 내 아들은 외고에 가서 나에게 이런 고민을 하게 하다니. 

역시 그냥 남고에 보냈어야 했나.  작은 아이는 남고를 보내야지.  

아이에게 쏟아붓듯 해줘야 할 말은 많은데 차마 할 수는 없었다. 

하고 싶은 수많은 말들을 꾸역꾸역 삼키며 문득 떠오른 한 마디를 덧붙였다.   

   

“Love is touch.”      


아이가 당황한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본다.      


“연애하면 만지고 싶고 닿고 싶어 질 거야, 자연스럽게.  그런데 반드시 허락받고 터치하는 거야. 그렇지 않은 터치는 범죄야.”        


그리고 끝까지 숨기고 싶었던 마지막 한마디를 더 내뱉고야 말았다. 

이 말하면 꼰대인 거 나도 잘 안다. 그래, 그냥 나도 꼰대 하련다.        


“대학 가서 연애해! 지금은 절대 안돼!”     


큰아이의 표정이 가관이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속은 시원했다. 

이게 엄마의 진심이다, 이 녀석아. 

이전 01화 프롤로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