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외모에 관심이 높아지다
아침부터 짜증이 난리도 아니다.
구시렁구시렁 간간이 섞여 들리는 된소리들과 ‘~씨’.
무슨 일인가 싶어 작은 아이 방으로 갔다.
작은 아이는 교복 상의 안에 입은 흰 면티가 마음에 안 드는 거였다.
겉옷 위로 목 쪽에 흰 면티가 보인다나 어떻다나. 아니 그러면 면티 말고 런닝을 입던가.
런닝은 죽어도 싫고 흰 면티는 입어야겠고, 면티가 흔적조차 보이는 것은 싫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지 참 어이가 없었다. 어차피 안 보여야 되는 거면 런닝이나 면티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잠시 지켜보다가 그냥 자리를 피했다. 아침부터 한소리해서 기분 나쁜 상태로 학교에 보내긴 싫었다.
'아, 작은 아이도 드디어 시작인 건가.'
큰아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외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사주는 대로 잘만 입고 다니더니 어느 날부턴가 사줘도 입지 않는 옷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은 그냥 거르는 거였다.
말이라도 해주면 바꿔오기라도 할 텐데 큰아이는 아무 말 없이 옷장에 박아 놓곤 했다.
내가 돈 아깝다고 왜 그러는 거냐고 성질을 내니 그제야 사기 전에 자기에게 보여달라고 했다.
'뭐? 사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입을 것이지, 사기 전에 결재를 받으라고? 내 돈 쓰는데 너한테 결재 받으리?'
순간 욱했지만 참았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사람 취향은 다르니까.
그런데 달라도 너무 달랐다.
큰아이는 유행에 별 상관없는 나와는 달리 유행에 민감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주관도 확실했다. 자신이 갖고 싶은 옷은 검색을 통해 사진을 모아 나에게 보여줬다. 딱 요거 사 오라고.
그때 부터였다. 내돈을 쓰면서도 아들에게 허락을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된 건.
지난 겨울 큰아이는 혹한의 날씨가 계속되는 중에도 늘 패딩을 입지 않고 후드티만 입고 다녔다.
추운 날을 대비해 빵빵한 롱패딩까지 준비해 줬건만 왜 입지 않는 건지 정말 이상했다.
롱패딩을 주며 입고 가라고 권유해도 듣는 둥 마는 둥.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물었더니 요새 누가 롱패딩을 입냐며 숏패딩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순간 욱했다. 참을 수가 없었다.
작년에 입을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롱패딩과 중간기장(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패딩을 두 개나 사줬다.
외모에 신경쓰길래 번갈아 입으라고 내딴엔 신경 써준 거였다.
그런데, 유행 따라간다고 또 사내라고?
추우면 입겠지 싶어서 또 살 생각 말고 있는 거 입고 다니라고 말하고 버텼다.
독한 녀석... 끝까지 후드티로 버텼다.
결국 내가 졌다. 어쩌겠는가. 아들 얼어 죽기 전에 사입혀야지.
그래도 그냥 지기는 싫어서 네가 엄마랑 같이 백화점 오픈런을 한다면 사주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아침잠 많은 그 아이가, 쇼핑은 취미도 없던 그 아이가 두말 않고 냉큼 따라나섰다.
또한 아이는 피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춘기의 특성상 여드름이 나고 개기름이 흐르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대개는 그냥 세수나 한번 더 하지 정도의 마인드로 지나가지 않나.
하지만 우리 아이는 아니었다.
큰아이는 밤마다 토끼 모양 헤어밴드를 하고 꼼꼼히 세안을 하고 거울을 보며 피부트러블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대로 두면 종일 거울을 끼고 살 기세라 사춘기 청소년의 피부에 좋은 패드와 화장품을 종류별로 준비해 줬다. 제 피부를 위해서는 와.. 얼마나 부지런한지.
앞머리가 이마의 여드름을 더 만드는 것 같아 집에 오면 앞머리에 핀을 꼽아 올려 주기도 했다.
큰아이는 상남자라더니 머리핀을 꼽고 만족해했다. 아 웃겨.
셋째, 아이는 남성 다운 몸, 체격과 키, 그리고 근육에 관심이 많아졌다.
전완근이 어떻고 복근이 어떻고 등등 아이의 입에서 전에 없던 이야기가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밤마다 운동을 한 후에는 몸에 빡 힘을 주고 나와 엄마 이 근육을 만져보라며 부쩍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의기양양해하기도 했다.
어깨가 넓어야 하고 키도 커야 하고 근육도 딴딴해져야 하고.
슬림하면서 탄탄한 몸매를 가져야 한다나 뭐라나.
매일 밤 큰아이의 자기전 루틴은 참 복잡하고 많다.
운동하고 세수하고 화장품으로 피부 정리하고. 족히 1시간 정도 걸리는 듯.
아이가 외모 가꾸는 시간에 차라리 잠을 더 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본인이 좋다는데 무슨 말을 할까. 좋은 거 해야지.
어차피 얼마 못갈 것을 알고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시간에 엄청 쫓기게 될테니 말이다. 아이는 곧 소중한 1시간을 어디에 투자해야 할 지 결정해야 할 시기를 맞을 것이다.
이제 슬슬 작은 아이도 발동이 걸린 듯하다.
키가 엄마를 넘어서고 손이 글러브 만해지더니 형이 하던 대로 아령을 들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보고 배운 도둑질. 그대로 답습하는 형바라기 둘째 아이.
가만 두고 보려니 헛웃음이 났다.
그래, 너도 네 멋에 살아. 응원한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