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많아진 시간 탓에 넘치는 여유를 주체할 길이 없어, 혼자 멍하게 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사람하나 바보 되는 건 일도 아니겠다 싶었다.
하지만 노는 것도 놀아본 놈이 잘한다고 지금까지 나를 주체로 뭔가 시도해본적이 없는데 갑자기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뭐라도 해볼까 하면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고.
우리 집은 아버지의 별명이 청학동일 만큼 매우 전근대적인 분위기의 가정이었다.
자라면서도 결혼해서도 당연하게 나보다는 늘 어른들이 먼저고, 남자 형제가 먼저고, 다른 사람들이 먼저였다. 결혼 후에도 남편이 있고 자식들이 있으니 또한 그러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분명,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인데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결혼한 후, 어느 날 친정에 갔을 때였다. 식탁에 간장게장이 있었는데, 엄마가 알이 꽉 찬 게딱지를 내 밥그릇에 놓아주는 것이었다. 게살도 발라 더 얹어 주시고. 무슨 일인가 싶어서 보니 이제는 친정에서라도 좋은 거 먼저 스스로 찾아 먹으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집에서도 그렇고 시집에서도 먹기 어려울 것 아니냐고.
그때부터였나 보다. 지금까지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
그리고 갑자기 수술을 하게 됐다. 가벼운 수술이었지만 느닷없이 처음으로 집을 떠나고 아이들을 떠나서 입원 기간 동안 혼자 지내며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됐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시련이 왔다. 어느 날 갑자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를 수가 없었다. 양 무릎에 이상이 생겼다고 했다. 나의 행동반경은 평지로 제한되었다. 평소엔 몰랐는데 계단이 생각보다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하고 있어 내 행동반경은 매우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자기 관리의 끝판왕까지는 아니어도 끝에서 두 번째는 될 거라 자부하던 나였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건강을 위해서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도 이런 일이 생길 거라면 난 뭐 하러 그렇게 신경을 쓰고 노력을 하며 살았는지 억울했다. 그리고 내가 이런저런 핑계들로 다음에 하겠다고 미뤄두기만 했던 일들이 안타까워졌다. 그런 일들은 대부분 나를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