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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W Dec 21. 2024

피켓팅에 성공하기

나의 적, 저주받은 손가락



즐겁게 살기로 마음먹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즐겁게 살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난 무엇을 좋아하나,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고민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시간이 소요될 듯했다.

예전에 죽어버린 세포를 다시 살려야 하니 이게 참, 어떻게 심폐소생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여차여차 어떻게 간신히 하나, 드디어 하고 싶은 것을 찾아냈다.

공연 보러 가기!!! 콘서트, 뮤지컬, 연극, 그리고 최근 나의 최애 <최강야구> 직관!!


목표를 정했으니 바로 행동계시하기로 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사람일 모르는 거다.   

때마침 최강야구 직관 날짜와 티켓팅 날짜 시각까지 공개되었다. 좋아 저거다!

모든 일들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게 마치 나 최강야구 보러 가라고, 오랫동안 고생했다고 칭찬하며 등 떠밀어주는 것 같았다. 내게 이런 행운이 오다니. 감격스러웠다. 


목표는 정해졌고 직관날을 달력에 표시해 놓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티켓은 날짜 맞춰서 사면되는 거라 문제없고, 어떤 굿즈를 구입할 것인가가 고민거리였다.

최강야구 유니폼 딱! 입고 모자 딱! 쓰고 응원봉 딱! 

입고 들고 쓰고 그날 하루를 불태워 보리라 제대로 작정을 하는 중이었다. 

상상만 해도 입꼬리가 하늘로 솟았다.  

요새 감독님이나 니퍼트 선수의 옷은 매진이라던데. 그럼 어떤 선수의 옷을 사야 되나... 고민 아닌 고민 중이었다. 유니폼은 핑크를 사고 싶은데 그건 매진이라고 하고. 블랙? 아니면 블루?

요새 야구장에서 취식이 되나? 되면 뭘 사들고 가지?


머릿속에는 이미 최강야구 관련 굿즈로 풀 착장을 하고, 맛있는 간식으로 짬짬이 기력 회복을 하며 응원에 몸 바치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얼마나 아름다움 모습이야. 이거야 말로 유쾌한 삶의 시작으로 딱 걸맞은 모습이 아닌가. 꿈은 컸다. 무척.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좋았다. 


그러나, 현실은 무척 달랐다.  

사실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예전에 한참 공연 보러 다닐 때에는 그냥 마음에 드는 자리 골라서 예매하고 가면 됐으니까. 큰 어려움 없이 카드있으면 됐다.

그런데 요즘은 아니었다. 나만 마음먹으면 만사 오케이인 줄 알았건만 웬걸 티켓팅이 하늘의 별따기였다.

시간 알람 맞춰 놓았다가 딱 들어갔는데 우와... 대기가 몇 천 명이 떴다.

순간 현타가 왔다. 이게 뭐지...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잘못 들어왔나...?

결국 대기만 주야장천 하다 난 그냥 아웃. 흐. 흐. 흐.

이거 실화냐......




그 후로 목표가 바뀌었다. 나의 목표는 티켓팅 성공이다.

내가 행복하려면 내가 유쾌한 인생을 살기 위해 거쳐야 하는 1단계 목표.    

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모두 하나로 통한다.

반드시 티켓팅에 성공할 것!!! 티켓팅만 성공해도 일단은 무척 행복할 것 같다.


한 두 번은 사전 조사가 부족했나 싶어서 수긍했다.

회가 거듭될 때마다 조사를 좀 더 확실히 했고 시뮬레이션을 거듭했으며 복붙을 위한 카피도 매우 신경 써서 준비했다. 반복되는 실패. 

아놔. 환장하겠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티켓을 사는 거냐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나의 손가락을 물끄러미 보다 내 손가락이 저주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처럼 손가락 다섯 개 맞고, 딱히 손가락 관절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며 클릭을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너는 왜 성공을 못하는 거니... 왜... 뭐가 모자라니 너는....  

가지 말라는 신의 계시인 건가.. 아니 신이 뭐 할 게 없어서 이런 걸 계시하고 난리냐 싶기도 하고


최강야구가 너무 인기가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서트는 조금 더 낫지 않을까.


'그래 나는 성시경도 좋아하니까 성시경 콘서트에 먼저 가지 뭐.'


훗. 역시나.  타이머 맞춰두고 땡 하면 잽싸게 경쟁에 뛰어드는데 항상. 역시나. 루저.

그냥 내 저주받은 손가락이 문제구나 기정사실화 되어 가는 중이다.

나를 도와 같이 티켓팅에 함께 임해주던 친구가 말했다.


"우리 그냥 성시경의 '먹을 텐데'에 나온 식당이나 가자."





더 나이 들면 체력이 안될 텐데

더 시간이 가면 어린애들 눈치 봐야 될 텐데

올해 목표는 공연에 가는 것이란 말이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소원이냐!

하늘에 별을 따달란 것도 아니고 로또 1등 당첨시켜 달란 것도 아닌데!

20년을 쉬었는데 공연하나 보겠다는 건 되게 되게 소박하지 않니?!

나 뭐 하냐...... 나 누구한테 성질을 부리냐......


아직 디너쇼 가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단 말이다. 

디너쇼는 우리 엄마 아빠 같은 노년층이 주로 가는 공연이다.(내 기준엔 그렇다) 

난 아직 젊고, 노래 듣고, 부르고, 춤추며 열광하고 싶단 말이다. 

내가 열광한 마지막 공연은 <시월에 눈 내리는 마을>이었다. 

그도 내가 쉬는 동안 사라졌다. 가고 싶다 콘서트, 가고 싶다 최강야구.  

이러다 당근시장을 기웃거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불법은 싫은데,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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