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나의 아이돌
"쟤가 우리 학교 얼짱이래"
"얼짱이 뭐야?"
지금은 익숙하다 못해 고전적인 그 당시 신조어 "얼짱", 얼굴이 짱이란 뜻으로 그 학교에서 얼굴이 제일 예쁜 아이에게 붙여주는 별칭이었다. 물론 얼짱이란 자격을 주는 기관이나 부서는 없었고, 당시 학교에서 잘 나가는 아이들, 소위 말해 일진들이 서로에게 그런 포지션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2002년 당시 공부밖에 모르던 초등학생 6학년이었던 나에게는 생소하고 신선한 단어였다. 매일 출석번호별로 우유배달을 했는데, 네모난 우유상자를 양쪽에서 한쪽씩 잡고 반으로 배달하는 일이었다. 우유를 가지러 가는 길에 한 여학생을 보고 친구가 한 말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제일 예쁜 애라는 뜻이야. 쟤 일진이잖아"
그때부터 내 마음 한편에 일진에 대한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나는 참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모든지 주목받고 싶고, 내가 제일 잘하고 싶고, 예쁨 받고 싶어 했다. 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공부도 잘했고, 친구도 많았고, 임원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임원선거 공지를 해주시면 마음속에 의욕이 앞섰고, 자진해서 후보에 올라 친구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공부를 잘해서 칭찬을 받고, 친구들 모두가 나를 좋아해 주는 관심을 즐겼다. 학교 입학 전에는 동네 어르신들 앞에서 SES(당시 인기 절정의 여그룹)의 춤을 추기도 하고, 명절에는 모든 친가분들 앞에서 재롱잔치도 했다.
아, 유치원 마지막 재롱잔치 때는 오프닝도 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주목을 받기 위해 모든 잘해야만 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얼짱"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예쁜 얼굴로 인해 이렇게 주목을 받고, 학교에서 "잘"나간다는 이미지를 얻은 그 아이가 너무 부러웠다. 그때부터 일진에 대한 호기심으로 공부(?)를 하곤 했다. 알아본 내용으로는 일진은 학교에서 제일 잘 나가는 친구들을 일컫는 말이고, 그 그룹 중 좀 더 잘 나가는 친구들한테는 별칭이 붙었다.
"얼짱"은 앞서 설명을 했다. "간판"은 그 학교의 첫인상으로 사실 얼짱보다 이렇다 할 이유가 있진 않다. "일짱"은 싸움을 제일 잘하는 아이 등등 "얼짱"빼고는 그냥 일진들 사이에서 서로에게 붙여주는 애정 어린 그들만의 애칭인듯했다.
학교에선 공부만 하던 내가 일진의 세계에 관심을 가진 후로 그들이 무리 지어 놀고 있거나, 나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마침 우리 반에도 일진 멤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친구들에 대해 물어보고, 조금씩 알아본 결과-나도 내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참으로 웃기다.- 스스로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다.
1. 일진은 잘 사는 애들만 할 수 있다.
2. 일진은 예쁘고, 귀엽고, 잘생긴 애들만 할 수 있다.
3. 일진은 팔에 털이 없는 애들만 할 수 있다.
푸하하. 마지막 이유는 너무 귀엽다. 지금도 신경을 안 쓰는 편은 아니지만, 어릴 때 나는 남들보다 털이 많은 내 몸이 너무 싫었다. 진한 눈썹, 거뭇거뭇한 인중, 넘치는 머리숱... 그러나 무엇보다도 원숭이처럼 수북하게 자라 있는 팔 털이 심한 콤플렉스였다. 여름에는 특히 더 싫었다. 반팔로 인해 드러난 내 팔을 본 몇몇의 반 남자애들에게 털복숭이라고 놀림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진 여자아이들 몇 명의 팔을 눈여겨봤는데 다들 뽀얗고 맨들맨들한 게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나같이 복슬복슬 원숭이처럼 팔에 털이 많은 애는 일진을 할 수 없을 거야'라고 막연하게 결론을 지어버렸다.
첫 번째 결론은 일진 친구들이 대부분 아파트, 빌라에 살고 있었다. 당시 우리 집은 빚도 많고, 가난했다. 가난에 대한 열등감은 없었지만, 담임 선생님이 종례시간 친구들 앞에서 독촉장을 나누어 줄 때는 창피함을 느끼곤 했다. 그때마다 잘 나가는 친구들은 독촉장을 받지 않는 걸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두 번째 이유인 외적 부분은 당연했다. 예쁘고, 잘생긴 아이들은 누구에게나 주목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면서 그것이 일진으로 가는 통로 역할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 가지 결론 끝에 나는 절대 될 수 없는 그 세계, 그리하여 일진에 대한 동경이 시작되었다.
그들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간직한 채, 나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고, 모범생, 착한 아이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생활에서 나에게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꿈에도 생각을 못한 채 높은 성적으로 학교에 입학했다. 그렇게 나의 파란만장한 중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