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닉과 주디의 사랑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가 사랑할 때

by 도그앤미

※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를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영화를 다 보고 글을 읽어 주세요.


주토피아 2를 보고 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편에게 물었다.

"근데 닉은 주디를 정말 소중한 동료로 아껴서 저렇게 지켜주는 걸까?

아니면...사랑하는걸까?"


남편은 단호하게 말했다.

"당연히 사랑이지. 친구한테 누가 저렇게 해? 사랑 아니면 못해. 그리고 여우는 바보야.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고백을 안 하다니."

둘은 대화를 이어가며 결국 닉(여우)이 주디(토끼)를 더 사랑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고는 현실 화제로 돌아와 넘어와 서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 여우는 너잖아. 네가 나 더 좋아하잖아."

"뭔 소리야? 너가 더 좋아하지!"

그렇게 서로가 상대방을 '여우'라고 우기며 시시콜콜 장난을 치다가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zootopia 2 poster.jpg 닉(여우)과 주디(토끼)는 서로 다른 사랑 방식으로 주토피아를 구합니다. (© Disney / Zootopia 2)



닉과 주디의 사랑은 다르다.

nick and judy.png [닉의 시선] 주디를 바라보는 닉의 눈빛은 부드러움과 애정이 가득합니다 (© Disney / Zootopia 2)

영화는 아주 미묘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두 캐릭터의 '시선'을 다르게 설정한다.


닉의 카메라는 항상 주디를 향한다.

주디를 바라볼 때면 눈이 부드러워지며, 입꼬리는 자연스럽게 올라가며

사랑이 잔잔히 번지는 표정이 닉의 표정 전체를 밝힌다.


반면, 주디의 시선은 늘 주토피아라는 세계를 향한다.

닉을 바라보는 눈빛 속에는 신뢰, 파트너십, 사명감이 가득하다.

닉은 소중한 존재이지만, 주디의 시선 중심에서는 언제나 세상과 정의가 있다.


결국 두 캐릭터의 관계는 이렇게 요약된다.


닉의 세계는 주디를 중심으로 돌고,

주디의 세계는 주토피아를 중심으로 돌지만, 그 곁에 닉이 있다.


현실주의자, 이상주의자 주디


닉은 현실주의자다.

하지만 주디에게만은 자신의 원칙을 쉽게 무너뜨린다.

도망가고 싶은 상황에서도, 주디가 택한 길이라면 끝까지 따라나선다.

언제나 옆에서 가장 든든한 지원자가 되고, 주디의 목숨과 안전을 무엇보다 우선에 둔다.


주디는 이상주의자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사명감이 언제나 최우선이다.

두려움에 맞서는 사람이 변화를 만든다고 믿고,

늘 먼저 불의에 맞서며 정의를 향해 달려간다.


이 둘의 차이는 절벽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위험한 상황.png [위기의 절벽 장면] 주디는 '사명감'에 따라 도망가는 것을 선택했지만, 닉은 주디를 절대 혼자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Disney / Zootopia 2)


주디는 닉을 잠시 두고 뱀과 고양이와 함께 도망친다.

아마도 주디의 머릿속에는 이런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여기서 둘 다 잡히면 아무도 구할 수 없다, 일단 나가서 방법을 찾아야 해.'


그러나 닉이었으면 달랐을 것이다.

그는 절대 주디를 혼자 두고 도망치지 않는다.

잡히더라도 함께 잡히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주디가 그의 세계에서 가장 소중하기 때문이다.


워터 슬라이드 장면: 닉의 대인배력과 주디의 귀엽지만 어이없는 자기합리화


워터 슬라이드 장면 역시 웃음이 터져나오는 순간이다.

워터슬라이드.png [워터 슬라이드] 목숨을 구하고도 오히려 용서받는(?) 닉. 닉의 깊은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 (© Disney / Zootopia 2)

닉이 주디를 구하지 않았다면 주디는 목숨을 잃을 수 있었던 위험한 상황.

그런데 주디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I forgive you." (뱀 놓친 거 용서해줄게.)


순간 어이가 없다.

고맙고 미안하다 말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닉을 용서한다고?!


하지만 주디에게 이 말은 부끄러움과 당황을 숨기기 위한 자기 방어적 유머에 가깝다.

완벽주의자의 민망함을 가리는, 주디다운 억지 귀여움이다.


그리고 닉은?

논리적으로 따지면 백 번은 따지고 들어도 되는 상황인데도 그냥 넘어가준다.

그야말로 대인배가 따로 없다.

주디를 향한 감정이 깊기에, 닉은 언제나 한 발 물러서며 주디를 받아준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다시 확인한다.

정말로, 닉이 주디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닉은 왜 고백하지 않을까?


남편 말처럼, 겉으로 보면 닉이 고백하지 않는 바보다.

하지만 닉은 알고 있다.


주디의 마음 중심에는 '주토피아를 지키자는 사명감'이 자리한다는 것을.

세상이 먼저고, 자신은 그 곁을 지키는 든든한 파트너라는 것을.


그래서 닉은 고백 대신 자신만의 방식으로 주디를 사랑한다.

맞춰주고, 지켜주고, 주디의 선택을 언제나 우선하는 방식으로.


상상: 만약 닉이 고백한다면?


아마 이렇게 흘러갈 것이다.

1. 당황

예상치 못한 감정의 직면 앞에서 잠시 얼어붙고,

2. "생각해볼게"라는 조심스러운 답변

소중한 파트너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서로 다른 종이라는 현실적 장벽 사이에서

조심스러운 답을 내놓고,

3. 그 이후, 닉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지 않은가?

맞다. 흔히 영화나 소설에서 등장하는, 고백 이후의 3종 세트 반응이다.


주디도 닉을 그 누구보다 깊이 신뢰하고 아낀다.

다만 일과 사명감이 너무 커서 그 감정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고백이라는 사건이 닥치는 순간, 주디 안의 감정 구조는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흔들림이 두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지도 모른다.


주토피아를 구한 건, 닉과 주디의 '사랑 방식'이었다.


love.png [관계의 완성] 서로 다른 시선, 다른 성격을 가졌지만 결국 서로를 완성시킨 두 파트너 (© Disney / Zootopia 2)


주토피아를 구한 것은 분명 주디의 사명감이다.
하지만 그 사명감 뒤에는, 언제나 주디를 지키고 있었던 닉이 있었다.


두 동물의 성격과 방식은 달랐지만, 바로 그 다름이 서로를 완성시키고
결국 주토피아를 구해낸 원동력이 되었다.


남편에게 “너도 닉처럼 해봐”라고 말하고 싶다가도,
그러면 분명 남편이 “너도 닉처럼 해보지?”라고 되받아칠 것이 뻔해
그 말은 조용히 삼키고 글로 남긴다.


그리고 조심스레 제안해본다.


우리도 서로의 주디가 되어주고,

서로의 닉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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