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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May 14. 2020

브런치, 프로필 직업란에 대하여

저는 장사하는데요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대략 일년 전 즘에 첫 시도를 했는데 두 번 리젝트를 당했고

한달 여 전 세 번째 도전했을 때 글쓰기 승낙을 브런치로부터 받았다.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독립출판으로 내 소설집이 발간되었다.

처음 경험하는 독립출판이었고

독립출판 성격상 마케팅이나 서적 입고, 문의, 정산까지 작가 혼자 해야하기 때문에 배워야 할 일들이 많았다.

지난 일 년은 독립출판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내 경우는 개인사업을 하는 디자이너가 독립출판 작가들을 응원하는 방편으로 프로젝트를 만들었는데 그 프로젝트에 응모하여 뽑힌 케이스였다. 그는 교안과 교정을 봐주었고 편집자의 역할도 했으며 책 표지와 내지를 디자인해주었으며 최종적으로 인쇄소에도 나 대신 달려가 주었다.

내가 한국에 살지 않는 특수한 경우라 특별한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요즘 세상에 작품 하나만 보고 책이 출판되도록 서포트 해주는 사람이 존재 한다는게 믿기지 않았고 그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소설 작품만 내던지고 나머지 모든 일을 한 그를 편집자라 통칭해서 부르기로 했다. 나와 편집자는 아직 얼굴도 한 번 본 적이 없지만 서로 좋아한다. 그는 내 소설을 좋아했고 나는 그의 헌신에 감사했으며 그것은 또한 글의 힘이기도 했다.


브런치에 작가 계정을 만들려면 관심분야 검색어 키워드를 넣고 이어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관심분야는 고민없이 뽑아들 수 있었는데 직업에 대한 키워드를 선택해야 할 때 나는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직업란 선택지에서 나에게 해당되는 직업 명칭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브런치에서 이미 작가로 모두 모였는데 직업을 또 넣는다?


나는 호주의 한 도시에서 호스텔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호스텔은 전 세계 백패커들이 모이는 저렴한 숙박업소를 말한다. 드라마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의 여주인공이 운영하는 그런 멋스럽고 운치있는 호스텔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도시에서 3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명소다. 그동안 거쳐간 젊은이들이 이제는 중년이 되어서 페이스북을 통해 추억을 곱씹고 아는 척을 하고 안부를 묻는다. 서로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는데도 같은 공간을 거쳐간 사람이라는 이유로 서로 팔로우를 한다.

독립출판으로 소설집을 내고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지만 생계를 위한 일은 엄연히 따로있고 그 일은 내 일상을 상당한 힘으로 지배하며 때로는 너무나 무겁고 버겁다. 다행히도 나는 내 일을 꽤나 좋아한다. 한겨울에도 민소매 티셔츠 하나만 입고도 하루를 날 수 있는 젊은이들 있고, 영어를 하긴 하는데 서로 다른 스타일의 영어를 구사해도 전혀 창피해하지 않는 워킹홀리데이들이 존재하며 그리하여 그 곳엔 늘 에너지가 넘친다.

하룻밤에 $25를 지불하는 젊음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오늘을 자고 나면 내일은 어디로 향하는지

그 방향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나는 늘 물었고 그들의 대답은 떠나온 국적의 다양성만큼 다 달랐다.


사람들을 만나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느라 애쓰는 일이지만 나는 이 일을 통해 다양한 인생을 만난다. 호스텔엔 순수한 여행객들이 다수지만 때로는 노오란 담벼락에서 마리화나에 취한 젊은이 혹은 알코올 중독으로 노후가 망가진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쓰게 되었다. 기사에 채택이 되면 신문사로부터 고료도 받지만 워낙 뜸하게 하는 일이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직업이라 할 수는 없다. 그래도 호주에서 사는 삶을 바탕으로 기사를 쓰고 있고 글쓴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라 직업의 성격과 유사하지만 결고 직업이라 할 수는 없다.


결국 나는 여행자들에게 방을 파는 사람이다.

그런데 브런치 작가 직업란에는 숙박업소운영, 숙박업종사, 호스텔주인 그것도 안된다면 '장사하는 사람'이라는 선택지가 없다.

나는 교수도 언론인도 연구인도 아티스트도 크리에이터도 변호사도 아니다. 브런치 작가 직업란에 나열되어 있는 50여개 직업군 중 어느 하나 비슷한 것도 없었다. 에세이스트도 살짝 고민했지만 내가 낸 책은 소설집이었지 에세이가 아니었고 앞으로 브런치에 에세이스트로서 정체성을 드러낼지 자신이 없었다.


브런치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직업란이란

글을 '쓸 만한' 사람을 미리 상정하여 연역적으로 나열해 놓은 것 같았다.

마치 어릴적 장래희망을 정하는 카테고리처럼 어리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양한 경로로 밥을 벌어 먹고 사는지 카테고리 안에서는 결코 가늠할 수 없다.


나는 결국 '출간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ISBN이 없는 책을 낸 사람이 출간 작가라고 불릴 수 있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습지만 출간 작가와 함께 마지막까지 고민한 직업란이 하나 있다면 바로, CEO였다.

작은 호스텔이어도 내 사업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라면 CHIEF EXECUTIVE OFFICER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진지하게 망설였지만 나는 결국 장사꾼이라는 생각에 과감히(?) 버렸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나같은 고민해본 사람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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