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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Feb 18. 2022

'아름다운 아줌마'라는 욕망

1. 마흔이 넘었다.

만으로도 넘었고 한국 나이로는 진작에 넘었다.

친구가 갱년기가   같다며 말하기를 주저하다가 가까스로 입술을 뗐다. 갱년기란 갑자기 들이닥쳐 사람을 요동치게도 하지만 시간을 들여 천천히 와서 몇년 후에 완성이 되어 꺽이는 사람도 있는데 자신은 느리게 움직이는 시간에 발을 들인  같다 했다.

지난 일년간 월경이 과다하여 철분제를 먹었고 우울증에 시달려 항우울제를 복용했으며 자다가 벌떡 벌떡 일어나 땀을 식히고 살이 급격히 찌기 시작했단다. 친구는 매일 십키로씩 걷는 사람이다.

이 모든 증상이 알고보니 갱년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고통의 근원이 갱년기라는 결론으로 수렴되자 회복하겠다는 바람도 내려놓게 되었다고 한다. 친구의 불면은 이제 답이 없었다. 우리는 마주 앉아 카모마일 티를 마셨다.


"언젠가부터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자."

친구의 말이 이제는 남의 말도 아니다.



2. 나는 여전히 20 아이들이 구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을 산다. 즐겨 찾는 쇼핑몰은 내가 이십대 후반에 생겨서 지금까지  나간다. 쇼핑몰 주인장은 나보다 나이가  두살 위로 짐작을 하며 모델이 되어 옷을 피팅한 그를 바라보면 나도  옷을 입으면 저렇게 아름답겠거니 착각하고 옷을 사고 만다.

쇼핑몰에는 이제 스무살  되어보이는 모델들도 있지만 주인장이 입은 옷은 언제나 가장 먼저 품절 사태를 부른다. 그에게서는 이십대 아이들이 가지지 못한 농염함이 있었다. 보톡스도 맞았을테고 리프팅도 했을테지만 그런 사소한 터치 너머에 '느낌'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테다.


나는 쇼핑몰 주인장처럼 아름답기를 바라고 결고 아줌마라 불리고 싶지 않았지만 40대 여성을 아줌마라고 부르는 일은 아주 '보편적인' 일일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21세기에 방영한 드라마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오래된 느낌인'아줌마'라는 드라마가 2000년 9월에 방영했었다. 당시 주인공들은 30대 후반 내 나이였는데, 이 글을 쓰기 위해 드라마 정보를 다시 찾아보기 직전까지도 그 드라마는 매우 늙은 사람들의 이야기라 기억했다.

그 드라마는 꽤 잘 만든 드라마였다. 소시민적 삶이 녹아있었고 전업주부로만 살던 여성이 경제적 주체가 되는 생활력도 보여주었다.

드라마가 인기 고공행진을 할 때 사회에서는 '아줌마'라는 단어의 의미를 재생산했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줌마라는 성별이 있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고, 아줌마는 곧 과격함 무식함과 같다는 등식에 사회 구성원들은 동의하였다. '성적 매력을 가지지 못한 인격체'를 칭하는 단어가 되기도 했고 그런 존재를 비꼬아 부르는 대명사이기도 했다. 그러한 사회적 탄압과 무시를 극복하기 위해 아줌마들은 스스로 성을 유희한 농담에 앞장서서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상대화된 남성들을 무기력하게 했고 남성들은 무기력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더욱 아줌마들의 거친 면모를 과대 포장하였다.

그 의미를 학습하는 시기에 나는 아줌마가 아니었는데도 두려웠다. 사실 나이 어린 여자가 두려워 하는 것은 별로 많지 않으나 아름다움과 젊음이 유일한 무기였을 때 그것을 상실하는 때가 온다는 것은 꽤나 겁나는 일이었다.




3. ‘모든 여성은 나이를 먹을수록  아름다워진다'

조지아 오키프가 한 말이다. 나는 이 문장을 쓰고 절망한다. 나는 외적인 아름다움도 잃어버렸지만 내적인 아름다움도 비루하다 자책하기 때문이다. 아줌마가 되는 일은 어쩌면 사나워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듯이…

나는 일을 하다가,

여자를 무시하는 한국 남자, 동양인을 무시하는 호주 남자, 여자인 동시에 동양인이기도 한 나를 무시하는 모든 인간들과 싸우느라 사나워졌다. 나도 느끼고 내 가족도 느끼는 바다. 싸우지 않고 적당히 살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지 못했고 날이 갈 수록 싸움의 강도가 높아진다.


출산과 육아 그리고 세월을 이기지 못한 나의 육체는 날마다 형태가 변했다. 신진대사가 저하되고 기초체력도 보잘것 없어서 이제는 회복이 어렵다.

나와  친구들은 아름답기를 명백히 바라면서도 동시에 성적 매력이 저하된 자신을 회피하느라 그것에 대해 관심이 없는  행동한다. 어떤 친구들은 성에 대해 '귀찮다' 하고 어떤 친구들은 아직도 '그래야' 하느냐고 한다. 나는 그들에게 동의하면서 동시에 다르고 싶다.

우리모두 다급한 신체적 '통증' 때문에 바쁘다. 친구의 갱년기 증상들은 신체와 정신의 인지 부조화에 의해 발생하는 부작용일지 모른다.

조지아 오키프는 '모든 여성은 나이 들수록  아름답다' 했는데 우리의 아름다움은 차지하기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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