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ggy Poo Feb 13. 2024

고름과 변비

  점심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가 숨이 찬다며 응급실에 실려 왔다. 할아버지는 거의 임종 전에 보이는 호흡을 보이고 있었다. 빠른 숨이 넘어갈 듯이 쉬다가 한 번씩 깊은숨을 몰아서 쉬고 있었다. 어제 우리 응급실에 왔다가 가슴 안에 고름이 차는 농흉이 발견되어 큰 병원에 가라고 이야기를 들었다는데 가지 않고 집에서 지켜보다가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어제 찍은 가슴 엑스레이와 CT 사진을 보니 왼쪽 가슴이 거의 다 하얗게 보이고 심장이 눌려서 오른쪽으로 약간 밀려나 있었다. 이런 경우에 왼쪽 폐가 거의 다 눌려서 숨쉬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심장을 눌러서 제대로 못 뛰게 할 수도 있었다. 나는 사진을 확인하고 망설일 것 없이 초음파의 도움을 받아 가슴에 주사기를 꽂고 고름을 빼내기 시작했다.

  주사기를 찌르자마자 고름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고름이 차기까지 분명히 며칠은 힘드셨을 텐데 숨이 거의 넘어갈 때쯤이 되어서야 응급실에 온 것이다. 고름은 계속 나왔지만 폐가 한꺼번에 다시 펴지면 손상이 올 수 있기 때문에 2000cc 정도만 빼냈다. 50cc 주사기를 이용해서 2000cc를 빼내고 나니 손가락이 얼얼하게 아팠다. 나온 고름에서는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시술을 바치고 장갑을 벗으니 냄새가 라텍스 장갑을 뚫고 들어왔는지 내 손가락에서도 같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비누를 여러 번 씻어도 핸드크림을 발라도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고름을 빼내고 나니 할아버지의 호흡은 한결 나아 보였다. 산소 수치도 올라가서 주던 산소도 조금씩 줄였다. 할아버지의 호흡이 좋아지는 것을 보니 손가락은 아프고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오래된 변비 환자를 볼 때도 비슷한 보람을 느낄 때가 있다. 변비가 오래되면 항문 바로 위의 직장에 오래되고 딱딱한 변들이 쌓일 때가 있다. 이 변들은 아무리 힘을 주어도, 또 관장약을 넣어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손가락으로 딱딱한 변들을 파주어야 한다. 장갑을 끼고 하기는 하지만 남의 똥을 손으로 만진다는 것이 처음에는 여간 망설여지는 것이 아니다.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 딱딱한 변들을 하나둘씩 빼내다 보면 어느새 위에 있던 무른 변들이 내려와 저절로 변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 그러면 환자들은 드라마틱하게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응급실에는 무겁고 진한 똥냄새가 진동을 하기 시작한다. 인턴 선생들이 손가락 관장을 하고 나면 나는 꼭 한 생명을 살렸다고 칭찬을 해준다. 오래된 변비의 괴로움은 겪어 본 사람들만이 알 것이다. 대부분 너무 힘들어하면서 응급실에 들어온다. 그런 환자들이 변을 본 이후에는 아주 편안한 표정과 자세로 바뀐 것을 보게 된다. 이런 환자들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은 정말로 한 생명을 살린 것이나 다름없다.

작가의 이전글 밥그릇 싸움과 개인의 자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