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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ggy Poo Jul 11. 2024

우리 모두, 한 목숨

  시골병원 응급실을 떠나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중환자의학 세부전문의 수련을 받고 있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중환자실 환자를 보고 싶다는 막연한 소원과 내 나이 마흔 살이 되어 시간이 더 지나면 새로운 것을 배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몇 달간 경험한 중환자실은 응급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응급실에서 환자가 내 손을 거쳐가는 시간은 길어야 서너 시간이기 때문에 환자에게 정이 든 적은 거의 없었다. 중환자실에서는 같은 환자를 며칠이고 보아야 한다. 아침에 가서 "잘 주무셨어요?" 인사도 하고 저녁에 퇴근할 때는 "잘 주무세요. 잠이 잘 안 오면 말씀하세요." 하고 퇴근을 한다. 10년 동안 응급실에서만 있던 나에게는 환자에게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다. 중환자실에서 비로소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느낀다. 

 중환자실에 있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인생의 마지막을 앞둔 어르신들이다. 나이 마흔이 되어 나도 많은 것을 느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의 삶은 이 분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 멀지 않은 미래이다. 내가 만약 서른 살에 중환자의학을 시작했다면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흔 살이 되어 보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젋었을 때 몰두했던 것들이 아닌 것을 느낀다. 돈보다는 사람이 중요하고 미래보다는 현재가 중요하다.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들이 언제까지 생을 이어나갈지 알 수 없지만 오늘 환자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최선을 다해 보살펴 주는 것. 결국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이생에서 의미 있는 것은 사랑의 흔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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