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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ggy Poo Sep 09. 2024

사람을 살리는 의사는 행복하지 않다.

  매일 죽음의 문턱에 서있는 환자들을 보며 살고 있다. 레지던트 4년, 전문의 6년 이렇게 살아온 지 10년 째다. 사회에서 바라보는 의사들의 위상이 어떠한지 나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좋은 집에 살지도 않고 비싼 차를 몰고 다니지도 않는다. 매일 아침에 커피 한 잔이 기대되고 병원밥에 맛있는 메뉴가 나오면 좋아한다. 퇴근을 해도 그저 내 환자가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매일 마음을 졸인다. 환자의 상태가 좋아지면 할렐루야 감사 기도를 드린다. 의과대학부터 의학을 공부한 지 20년째이지만 나는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인체는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내가 전공한 부분만 다른 의사들보다 좀 더 알 뿐이지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까막 눈이다. 환자마다 상태가 다 다르고 같은 약도 환자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다. 경험이 많은 의사를 따라갈 수 없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감은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아찔하다.

 얼마 전부터 생긴 필수의료라는 말은 아직도 생소하다. 사실 모든 의료가 다 필수의료이지만 특별히 생명의 유지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몇 과들을 필수의료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필수의료를 하는 의사들은 다른 의사들만큼 행복할까? 객관적으로 보아도 사람을 살리의사는 행복하기 어렵다. 먼저, 필연적으로 밤을 새워야 한다. 당직이 필수다. 한 번씩 을 꼴딱 새우고 나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일이 힘들고 어렵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해서 힘든 것도 있지만 죽음의 문턱에 서있는 환자들은 챙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때문에 어렵다. 부담도 크다. 나의 판단, 나의 시술 하나가 환자의 생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있기 때문에 간담이 서늘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식은땀을 흘리고 나면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이런 일을 하고 있나... 편하고 부담 없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러면서 또 나는 똑같은 자리로 출근을 한다. 나는 아직도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죽음의 실존을 체득하는 장소이다. 나는 환자들의 죽음을 보면서 나의 죽음을 보았고 인생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리고는 소유와 행복에 대한 미련이 떨쳐지는 게 느껴졌다. 이것이 의사가 환자에게 받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인 것 같다.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나이 마흔에 대학병원에 돌아와 당직실에 쭈그리고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커버도 없는 당직실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한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 의사가 될 이유가 없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려면 행복해지기는 어렵다... 이것이 현실이지만 다 모르겠고, 오늘 내가 보는 이 환자는 꼭 좋아지면 좋겠다.' 이것이 박봉에 당직을 서며 대학병원에 남아있는 대다수 의사들의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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