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집의 방엔 내가 줬던 풍성한 꽃이 줄기가 짧아지고 점점 시들어 자리를 잃고 꽂혀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작은 이동형 서랍 위를 닦는데 수술의 꽃밥이 다 타고 남은 향초의 재처럼 떨어져 있었다. 거실엔 그녀의 지인이 준 꽃나무 가지의 닫혀있던 봉우리에 이제 막 무언가 움트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그녀가 일을 하는 동안 혼자 산책을 다녀왔다. 북한산 부근이나 가서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려던 일이 광화문까지 가서 좋아하던 시집을 꺼내들고 어설프게 밀봉을 해서 400원짜리 153 모나미 볼펜을 사 편지까지 쓰게 만들었다. 저녁 광화문에는 보행 신호 하나를 건너려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그녀 집에 다 와갈 무렵에는 크리스마스에는 작은 케이크 하나에 촛불이나 불자는 나의 말을 잊지 않고 "케이크 뭐? 지금 말해 주문하게" 라고 문자를 보낸 그녀에게 이럴 수... 케이크는 내가 깜짝 이벤트처럼 사 가려 했는데... 그 말을 전부 보내지는 못하고 '왜 선수를 치냐'고 답장을 보냈다.
혹시나 없으면 어쩌려나 싶어 전화를 걸었던 대형 매장엔 대목을 맞아 케이크가 가득 쌓여있었다. 그래서 특별한 날이면 먹곤 했던 좋아하는 케이크와 초를 사들고 그녀 집으로 갔다. 크리스마스는 빨강이지, 하며 그녀 동네 마트에서 좋은 술은 못 사고 참이슬 오리지널 페트를 샀다.
그녀는 저녁은 돌아온 토마토 수프야, 하며 빨간 토마토 수프를 둥둥 끓이고 있었다. 그녀가 수프 위에 치즈를 뿌려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동안 나는 베란다에 감춰놨던 케이크를 꺼내 급히 초를 꽂았다. 그리고 그녀와 빨간 뚜껑을 따서 투명하고 쓰디쓴 술을 나눠 마셨다.
그녀는 취해서 바닥에 엎어져 내가 산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는 동안 시집의 시들을 중얼중얼 꼬부라진 혀로 소리 내어 읽었다. 애써 하우스에서 키워낸 꽃이 금방 시드는 계절, 아쉬운 맛이 혀에서 계속 가시고 밤을 넘어 결국 크리스마스가 왔다.
이쁜 듯 평범한 날이었고 그게 제일 좋으려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근대는 이십 대는 갔고 잔잔하게 수술의 꽃밥이 떨어지는 삼십 대의 피가 흐르고 있다. 내일은 일어나면 그녀와 조금 걷고 이야기나 나눴으면 좋겠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