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by 도고

저녁을 먹고 그녀를 구슬려 산책을 나갔다. 그녀는 그동안에는 내가 할 일이 없던 목도리를 춥지 말라며 옷방에서 꺼내 잘 개어진 그것을 건네주었다. 현관문을 나서며 목도리를 조여 가슴팍에 여미니 어디 봐봐, 그러고선 잘 어울리네, 하고 말해주었다. 날 돌아봐주는 그녀의 눈빛에 기분이 좋았다.


내가 모르는 동네를 천천히 걷는 일이란 조금 신비롭고 별것 아닌 것들에도 몸이 진동을 하곤 해, 발길이 빨라지다가도 좋아하는 누군가의 속도에 맞춰 나란히 걷는 일이란 아 좋다, 별거 아닌 게 참 다 좋다, 하며 빨간 신호등을 보고 입김 같은 말들을 뱉게 한다.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달리는 공원 하나를 그들 뒤에서 지나, 이 밤 스태프들이 모여 배우와 촬영을 하는 공원 한편에서 허리 돌리는 기구를 타다 정자에 팔을 벌리고 누워 또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일어나서 동네의 좁은 길을 조금 거닐며 그녀의 집 뒤편에 있는 작은 산길을 오르고, 또 정자에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입을 맞추고, 내 눈이 너무 질척인다며 징그러운 얘기를 듣고, 그녀가 내려간 적 없던 길로 내려와 그녀도 처음 가보는 길로 다시 그녀의 집을 찾아가고, 그녀도 처음 나도 처음인 일들이 있고.


들어가는 길엔 사람이 몰리는 붕어빵 마차에서 팥 두 개와 슈크림 붕어빵 하나도 사 먹었다. 집에 들어와 찬장을 열다 그녀 친구가 놓고 간, 내가 설거지한 컵도 깨 먹어 죄인이 되었다. 일본에서 직접 산 거라는데 어떡하지. 그녀의 친구는 날 용서하지 않겠다는데. 어쩌면 이 죄인에겐 복에 겨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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