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결재 서류까지 대신해주실 거 아니잖아요

우리 아이 혼자서도 잘 해요

by 송가윤




바쁘신 와중에도 교사 일까지 대신 해주시려는 학부모분들이 있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결국 해야하는 건 나다. 말만 하지 않고 서류 처리와 결재까지 다 해주시겠다면야 고민해보겠지만 그랬다가는 내가 감사에 걸리겠지. 그러니 교사의 소관은 교사에게 맡겨주셔라. 내 업무에 말을 얹을 때마다 단전에서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가 나오지만 “네, 참고하겠습니다.” 정도로 달콤하게 풀어내려 애쓴다. 그러다 가라앉은 씁쓸한 잎들. 그 잎들을 몇 장 건져보겠다.




첫째, 출결처리. 아마 교육 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특혜성 요구일 거다. 체험학습은 서류 제출 기한과 내용이 정해져 있다. 내일 떠나는 여행이나 가족 행사는 사전 허가가 없었으니 체험학습으로 처리될 수 없다. 부모님 병원 따라 가는 것, 안경점 가는 것 등은 병결이 아니다. 오전 수업만 듣고 하교해 나들이 가는 것은 무단조퇴다. 늦잠 자서 중간에 오는 것도 무단 지각이다. 범위 내의 경조사와 학생 본인의 질병을 제외하고는 사전에 허가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무단이라고 보면 된다.


알면서도 자주 봐주었으니 될 거라고 생각하는 학부모분들이 많다. 전날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놓고 출석인정을 기대한다. 교사가 해줄 수는 있다. 그런데 그건 교사의 호의지 학부모의 권리가 아니다. 교사가 무단으로 처리한다고 알려도 깔끔하게 인정하자. 병원 간대서 보냈더니 병문안 간 거였고, 아침에 놀이공원 간다는 문자를 남기고, 여행을 다녀왔는데 애만 오고 결과보고서는 안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근상도 없어졌고 초등학교의 출결은 입시에도 반영 안 되니 중요치 않다 말한다. 그럼 별 거 아니니 원칙대로 무단으로 남게 내버려두라. 사실 나는 ’출석인정결석‘이란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그럼 직장인들에게도 ’출근인정연가‘가 있어야 하지 않나? 너무 좋겠다. 학부모분들의 ’육아인정자기돌봄‘같은 것도 생길 수 있을 거다.

느슨한 출결처리의 가장 큰 문제는 가정에서 수업 결손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아이가 학교 며칠 빠진다고 무슨 일이 벌어질까? 혼자 구멍난 수학 진도를 메울만큼 똘똘하거나 학부모가 집에서 역사를 가르쳐준다면 아무 일도 안 생길 거다. 하지만 그런 가정은 거의 보지 못했다. 놀랍게도 노느라 안 와놓고 보충지도 해달라는 학부모들은 있더라. 아이들에게 학교는 함부로 빠질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알려주었으면 한다. 그래야 직면하기 힘든 일 있다고 직장을 안 가는 회피형이 아니라 실수의 결과를 감내하고 끝까지 해내는 어엿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






둘째, 자리배치와 반 편성. 학년 말이면 학부모분들의 상담 요청이 종종 들어온다. 자녀 걱정을 내려놓으며 반 편성을 부탁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겨울방학식이 다가오면 학생과 학부모 모두의 관심사인 반편성. 어떻게 이루어질까? 기본적으로 성적으로 나눈 뒤 동명이인,쌍생아,학교폭력,다문화,기초학력,특수학급 학생 등을 추가로 고려한다. 당연히 조합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최대한 벌려놓는다. 그래도 재작년에 있었던 사건, 싸우고 지나갔던 갈등까지 반영되기는 힘들다. 학부모끼리 사이가 안 좋은 건 더더욱 고려대상이 아니다. 아이들은 화해하고 다시 노는데 학부모끼리 앙숙이 되어 학생들의 관계에 개입하는 경우도 꽤 있다. 자리배치는 선생님마다 다르다. 무작위로 하거나 지정을 하거나 다양하다. 어느 방법이든 학급 운영하는 교사가 고민할 일이다.


학생 간의 문제나 학부모끼리의 갈등 등 무엇이 원인이어도 교사에게 대놓고 부탁하지는 말아야 한다. 학급 내 자리배치나 학급 편성이나 정말 심하면 교사가 알아서 떼어놓는다. 그리고 사회에서의 연습을 하는 곳인 학교에서 잘 맞지 않는 이들과도 지내는 훈련을 충분히 하는 게 더 맞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겪을 세상이 얼마나 험난할지는 어른인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거다. 힘들다고 피했다가는 커서 견디지 못한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학교에서의 인간관계는 부모도, 교사도, 학생 본인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아이는 안 맞는 친구 옆에서도 웃을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위한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중이다! 당신이 무게를 같이 들어주면 아이는 당장은 편하겠지만 근손실이 일어날 거다.


그래도 꼭 부탁드려보고 싶다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말고 우려만 표하라. “00이랑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더 자주 싸우더라고요. 교실에서 많이 심한가요?”나 “우리 아이가 00이와 사건이 많았잖아요. 내년에는 잘 지낼 수 있을까요? 방학 때 어떻게 지도해 놔야 할까요?”와 같은 대화만 나누면 된다. 학교에서 봤을 때도 심각하다면 알아서 될 것이다. 반 편성은 학교의 일이고 담임 교사들의 소관이다. 당신의 힘이 닿아선 안 되는 곳에 뜻을 밝히고 싶다면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 학급은 담임 교사가 운영하고 당신이 대신할 수 없다. 그 뒤를 책임질 수 없기에 그를 꾸리는 것도 교사에게 맡겨야 한다.






셋째, 학교에서의 훈육. 아이니 당연히 어리지만 새삼 너무 어리다고 느낄 때가 있다. 부모들이 건드리면 깨지기라도 할 것처럼 아이를 감쌀 때다. 아이가 숙제를 못해가는데 너무 혼내지 말아달라, 우리 아이가 자신감이 없으니 칭찬을 많이 해달라, 자기가 살피지 못한 거니 너무 뭐라 하지 말아달라 등의 대사들을 읊으신다. 그러면 나는 눈물을 글썽이는 부모에게서 아이를 뺏어가 혼이 빠질 때까지 소리치는 못된 마녀가 돼버린다.


이유가 뭐가 됐든 아이가 잘못을 했다면 아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주말에 가족행사가 있어 숙제를 못 챙겼더라도, 엄마가 늦잠 자느라 못 깨워준 거더라도, 통신문을 다 써놓고 못 가져온 거더라도 아이의 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과제는 해야한다는 걸 가르쳐야 어른이 돼서도 핑계를 안 댄다. 아이의 핑계를 부모가 만들어줘서는 안 된다. 그래야 부모가 저녁에 나가자해도 받아쓰기 써야한다고 말할 거고, 혼나고 울면서 오더라도 까먹은 자신이 실수했다고 받아들일 거다. 주변에서 유혹을 하고 핑계를 대줘도 ’내 일은 해야 하고, 결과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걸 알려주자. 당신이 내준 과제가 아니라면 당신이 면제해줄 수 없다.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면 당신이 대신 혼날 수도 없다. 아무리 당신을 빼닮았어도 교사는 분신술에 속지 않는다. 학교에서의 아이는 독립된 존재임을 잊지 말자.





교사 입장이 아니면 선을 넘는 부탁인지 알기 힘들 때도 있다. 물어보기 어려울 때는 ’내 부탁을 서류로 남길 수 있는가?’를 떠올려보자. 규칙에 어긋나는 사안이라면 꺼내지 말고 품 속에 넣어두면 된다. 은근한 말투로 뜻을 내비쳤더라도 될 거라 기대하지 말자.

학교에서 아이는 부모없이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부모가 아이의 일을 많이 해주는 게 당연했겠지만 이제 아이에게로 건너가야 한다. 학교에서 아이가 억울해도 이겨내고 실수의 뒤처리까지 스스로 하도록 응원한다는 것만 관심으로 알려주면 된다. 분명 교사도 잘 맞는 애랑 붙여보고, 그럴만했다 싶으면 좀 살살 혼내주고, 서류 날짜를 고쳐주며 몰래 밀어주고 있을 거다. 아이를 위해 봐주기도 한다는 걸 아이는 모르게 해주자. 아이가 자신의 성장을 뿌듯해할 거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부모와 교사 모두 아이를 믿어야 한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등에서 손을 떼자. “우리 아이는 스스로 잘해요!”





+짧은 이야기 한 토막+

겨울방학식 날, 나는 학생을 그렇게 울려보기는 처음이었다.

“너 가야, 나야?”

“나 나야. 너는!!”

“나 가야! 으앙 ”

9살 소년이 온 얼굴이 시뻘개지게 울었다.

내가 미안하다. 너네가 너무 친해서, 애인보다 더 집착하길래, 다른 애들이랑도 좀 놀라고 그랬어.


숨을 헐떡이며 콧물을 훌쩍이는 아이와 그 옆에서 자기도 눈이 촉촉하면서 토닥여주는 아이.

그래, 내가 잘못했다. 너네 둘이 평생 단짝해라. 근데 너네 반 두 개밖에 없어서 어차피 옆반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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