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은 묵음으로 해주세요.

자동 삐-처리 안 되나요?

by 송가윤


대화를 하다 보면 기분 나쁜 내가 속좁은건가 의문을 품게 될 때가 있다. 큰 맘 먹고 산 가방 얘기를 하는데 “아, 이거 비싼 거야? 그렇게 안 보여.” 라던가. “좋겠다. 우리 남편은 워낙 까다로워서 그런 거 사주면 안 입더라”는 내가 고른 걸 별로라고 누른다. 차라리 건너뛰는 게 나았을 생선 가시 같은 말들. 짚어내자니 내가 트집 잡는 모양새가 되는 사소한 말들을 좀 확대해보겠다.




첫째, 등원과 하원. 여기서 분명히 하자. 학생은 학교에 등교,하교한다. 여기는 유치원도 학원도 아니며 저는 초등학교 교사랍니다. 1학년 학부모에게서 학년 초에 오는 연락이라면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코 밑 시커먼 6학년 애가 늦는데 “아이 지금 등원합니다.”라고 하시면 제가 한숨을 쉬어도 이해해주세요. 초반에는 ‘등교,하교’라고 정정해서 보내도 다음번에 ‘등원,하원’이라고 하실 때는 결국 포기한다. 혹시 아이는 아직도 유치원을 졸업 못 한 걸까요? 아니면 저한테 학원비를 내고 계셨는데 제가 모르고 있었나요? 바쁘시겠지만 지금 학생이 다니는 곳 이름을 헷갈리지 말아주세요.


사실 그것 좀 잘못 썼다고 기분 나쁠 건 없지 않나 싶을 거다. 나도 이게 왜 기분 나쁜 건지 스스로도 의아해 답을 고민했었다. 우선, 자녀의 출결사항을 갑자기 변동시킬 때나 아이가 너무 작고 소중해 어디로 사라졌을까 봐 위치를 파악할 때 사용되는 단어다. 그리고 왜인지 이 단어를 사용하는 학부모분들 중 나에게서 즉각 응답과 친절함을 바라는 분들이 많았다. 이제 이 단어가 뜨면 ‘학교를 어떻게 보시는 걸까’란 생각이 같이 떠오른다.



둘째, “선생님 알고 계셨나요?” 상담을 하다 듣게 되는 고정 멘트 중 하나다. 참, 궁금하다. 내가 뭐라고 답하길 원하는 걸까? 혹시 보신다면 좀 알려주세요. 알고 있었다고 하면 왜 알면서 일이 이렇게 되게 두었냐고 하겠지. 모르고 있었다고 하면 교사가 그걸 모르면 어떡하냐고 하겠지. 뒷이야기를 상상해보면 이건 내가 알고 있었는지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이 사건을 본인이 알게 되는 상황까지 만들었다는 타박이다. 질문의 형식을 빌렸지만 교사의 실력을 시험하는 채점표처럼 느껴진다.


안타깝게도 교사도 눈이 두 개고, 귀도 두 개고, 심지어 입은 하나다. 솔직히 교사는 탈부착되는 입을 하나 더 줘야된다고 생각한다. 더욱 안타까운 건 학급에 아이는 한 둘이 아니고, 그 아이들은 교실에만 머무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 알 수도 없거니와 안다고 다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내 자식 한 두명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우리 반 이십 여명의 우주가 어떻게 통제 되겠는가? 교사가 아이들의 모든 일에 대해 알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말자. 그게 가능하다면 그 사람은 교사가 아니라 국정원 에이스가 됐어야 했다. ‘이런 사태가 터졌는데 선생님이 아무 말이 없었다니!’ 당신이라도 알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주기 바란다. 또는 교사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게 경험상 시간이 해결해줄 확률이 높아 기다리고 있는 걸 수도 있다. 그러니 “선생님,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고요. 어떡하죠?”라는 말로 대신해주자.



셋째, “소통 좀 많이 해주세요.” 아이의 어엿한 모습과 해낸 학습 내용을 알고 싶은 마음 이해한다. 하지만 교사는 학생들과 매일 목에 피가 터지게 소통하고 있답니다. 거기에 열중하느라 여러분에게까지 닿을 힘이 없습니다. 자녀가 잘 지낸다는 걸 확인받고 싶어 사진을 자주 올리고 세심한 연락들을 기대하는 분들이 있다. 그들이 놓치는 건 학부모와의 소통을 잘 한다는 게 교사와 학생 간 소통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사람이니 어느 정도의 개연성은 있겠지만 별개의 일이다. 사람의 힘은 한정되어 있다. 학부모와의 소통과 학생과의 소통을 둘 다 잘하는 뛰어난 선생님도 계실 거다. 학생과의 소통에만 집중하는 선생님도 있다. 간혹 학생과의 사이는 안 좋은데 학부모와의 소통으로 모든 게 무마되는 신비한 경우도 봤다. 자주 보는데다 어린이인 학생 대하는 모습과 몇 번 본 적 없는 성인인 학부모 대하는 모습은 다를 수 밖에 없다.




학부모가 원하는 건 무엇인가? 아니 교사의 본질이 무엇인가? 교사는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 당신과의 대화에서는 좀 미덥지 못하더라도 우리 아이가 별 일 없이 지내고 있다면 괜찮은 거다. 내가 아무리 선생님과 친해도 우리 아이가 교사와 합이 안 맞으면 본말전도다. 우리 아이 담임선생님이 너무 소통을 안 한다거나 딱딱하다? 교사가 학생과의 소통에 온 힘을 다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 라고 할까봐 못했던 말들. 여러분들은 뭐가 있나요?



+작은 이야기 한 토막+

갓 교사가 된 나는 도장을 모으고 있었다. 알림장에 매일 다른 도장을 찍어주는 게 나름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국어 시간에 배웠듯이 줄임말은 지양해야 한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보다.

“다 썼어요!”

오동통한 손으로 알림장을 내민다.

내 이름이 만년도장으로 새겨진다.

“딴 거!”

너무 확고한 주문에 반말을 한 것도 잊을 판이다. 너의 두 번째 손가락이 가리킨 도장으로 두 번째 도장을 찍는다.

“이거? 왜?”

“큰 게 좋아요!”

한창 큰 게 좋을 때구나. 그래. 그래야 너도 쑥쑥 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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