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화
'혜진쓰~ 나 내일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주말이니깐 커피 한 잔 괜찮지? 내가 네 동네로 갈게'
오후 네시쯤 은석이의 문자를 확인한 혜진이는 자신도 모르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알았어~ 도착하면 전화해'라고 답장을 했지만, 그 순간 은석이가 이전 연인과 헤어지고 자신에게 연락을 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꽤 오랫동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혜진이는 은석이와 7년째 친구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 전학 온 은석이와 수행평가를 같이 하게 된 이후로 혜진이는 은석이에 대한 좋아하는 감정을 조금씩 키웠지만, 핸드폰 번호를 교환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 기말 성적 말고는 따로 연락하진 않았다. 다행히 학부모-교사 회의에서 처음 만난 혜진이 어머니와 은석이 어머니는 대학교 동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가깝게 지냈고, 혜진이는 엄마를 통해 은석이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혜진이와 은석이는 같은 대학교에 입학했다. 과외 때문에 혜진이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전공과 선택 과목을 모두 오전시간으로 시간표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금요일 공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은석이의 시간표는 대부분 오후 수업으로 채워졌고, 금요일이 제일 바빴다. 혜진이와 은석이가 약속을 잡지 않는 이상 경로가 겹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은석이는 '예솔'이란 두 살 연상인 선배와 연인이 되었다. 정말 갑작스러웠지만 혜진이는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축하해 줬다. 더 이상 친구로라도 연락하면 안 될걸 알았기에 은석이에게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니면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으니, 혜진이는 일기장에 솔직한 마음을 적어 내려갔다.
2016년 4월 초
은석아, 네가 예솔 선배랑 사귄다고 나에게 소개해줬던 날,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한숨도 못 잤다? 어릴 때부터 난 공부가 적성에 맞아서 열심히 했던 거지, 성적이 상위권이란 사실은 부모님의 자랑거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는데. 선생님이 지정해 준 수행평가 파트너인 널 만나고 나서는 내가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이 기뻤어. 같은 대학에 합격했을 때는 너무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어. 어떻게 하면 대학 동기로써 좋은 추억을 쌓다가 천천히 우리의 관계가 발전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었는데... 근데 이렇게 빨리 네게 연인이 찾아올 줄이라... 네 앞에서는 축하해 줬지만, 솔직히 축하해 주기 싫었어.
그리고 3년 후, 혜진이는 취업 준비 중이었고 은석이는 군대를 갔다가 복학했을 때쯤 '헤어졌어'라는 은석이의 문자에 혜진이는 다시 마음이 쿵 떨어졌다. 그를 보지 않는 시간 동안 은석이를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술친구가 되어달라는 문자 하나에 고등학생 때의 감정이 다시 피어올랐다. 그래서 그 당시 순수한 마음으로 적었던 일기장을 다시 펼쳐보게 된 것이다.
'아이고, 나도 참 진솔하게도 적었네 ㅋㅋ'라며 혜진이는 혼잣말을 했다. 그러다가 커피 한잔 하자는 문자가 혜진이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