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

by 도화민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겪었을 질풍노도의 시기에,

저 또한 어지러운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왜 사는가’ 하는 것들 말이지요.


이 생각들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히 사그라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장 공부가 힘들어서 그랬던 건데,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다 보니 그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더군요. 대신 그 의문은 왜 태어나고 왜 살아가냐를 넘어서 아래와 같은 의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애초에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러게요, 존재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그냥 저기 있으니까 저게 존재하는 거지 도무지 무슨 소리인가 싶은데요.



여러분이 서랍에 연필을 넣어두고 나중에 다시 꺼내 썼다고 해봅시다. 연필은 서랍에 넣기 전은 물론 서랍 안에서도 잘 존재했을 테고, 다시 꺼내 내 손에 쥐어지는 모든 순간에 잘 존재했을 겁니다. 당연합니다. 연필에 발이 달려서 도망갈 리는 없으니, 내 손에 있든 서랍에 있든 연필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양자역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시 꺼내보기 전까지는 확률로서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네요.)


이 이야기를 조금 비틀어 볼까요? 이번에는 여러분이 서랍에 연필을 넣어 두는 것까진 똑같은데,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린 상황입니다. 심지어 다시 쓸 일이 없어서, 완전히 잊고 살다가 이사 가는 김에 그 서랍을 통째로 버렸다고 해봅시다. 연필은 언제나 그곳에 잘 존재했을 것이고 버려지고 나서도 어딘가에 있긴 하겠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연필이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하거나 말거나, 이제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었으니까요. 살면서 본 가장 슬픈 연필 이야기가 아닐 수 없군요.

불쌍한 연필 이야기




방금 본 불쌍한 연필 이야기는 ‘존재한다’는 말이 단순히 저기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합니다. 단지 기억에서 사라진 것만으로,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으니 말이지요. 별별 생각이 많던 어린 시절의 저는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나는 왜 태어났나, 나는 왜 존재하나.’가 아닌 새로운 질문에 도달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동안은 ‘존재한다’라는 말의 의미도 모른 채 내가 왜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만 던지고 있었던 거지요. 이제 그다음은, 어떻게 존재하는 건가를 고민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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