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by 도화민

지난 이야기에서 우리는 단순히 ‘저기 있으니까 존재하는 거지!’ 하는 게 존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불쌍한 연필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 채 버려진 연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네요. 불완전합니다.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연필의 존재를 알고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아하, 진정한 ‘존재한다’의 의미는 ‘기억하는가?’에서 나오는 걸까요? 여기서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 시절의 저는, 기억하는 걸 넘어서 눈에도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기 시작합니다.



이번에 들려드릴 이야기는 불쌍한 연필 이야기보다 더 슬픈 내용입니다. 뭔지 모를 재난으로 지구가 멸망하고 단 한 명만이 살아남은 이야기입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그는 살아남은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란 희망도 갖고, 널브러진 음식을 주워가며 살아남고 있네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정말로 자신만 남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결국 미쳐버리고 맙니다. 오 저런, 그의 눈에만 보이는 상상 친구가 생겼군요. 상상 친구는 그가 어딜 가든 함께하고 감정을 나누며 대화도 합니다. 실제로는 형체도 없지만 그에게는 존재하는 친구가 생겼네요. 미쳐버렸지만 더는 외롭지 않으니 그에게는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쌍한 사람 이야기


그런데 이상합니다. 불쌍한 연필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 만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되고 말았는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 친구는 그에게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없네요. 아까 말한 기억 하는지, 눈에 보이는지 등의 여부는 ‘실제로 존재하는가’와는 별 상관이 없는 걸까요?


지금까지 말한 기억 하는지, 눈에 보이는지 등 우리가 자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의 과정을 ‘인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어떤 물체를 보거나, 만지는 등의 과정을 통해 인식하면 당연히 그것이 존재한다고 결론 내립니다.


그러나 앞서 들려드린 슬픈 이야기들을 통해, 인식하지 못했을 때의 존재 여부는 어떻게 되는지와 인식했음에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모순이 고민되기 시작합니다.


뭔가가 저기 존재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원리가 이토록 호락호락하지 않다니! ‘존재’의 조건이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게 전부가 아니라면, 어떤 조건이 더 추가되어야 할지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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