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이야기를 통해 보고 느끼는 등의 ‘인식’만으로 ‘존재한다’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는 불쌍한 연필과, 존재하지 않지만 그에게는 실존하는 상상 친구. 대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 진정한 의미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이제 드디어 제 어린 시절 상상의 첫 결말에 다다를 하이라이트입니다.
지난 이야기들에서 살펴본 불쌍한 연필 이야기와 더 불쌍한 사람 이야기에는, 평소의 상황에서 보기 어려운 예외적인 조건이 숨어있습니다. 바로 이야기에 사람이 한 명밖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지요. 산에 홀로 들어가 사는 도인이 아니고서야 우리 일상에는 가족이던, 친구던, 지나가는 사람이던지 간에 항상 누군가가 존재하니까요.
만약 불쌍한 연필이 아무도 모르게 버려지지 않고, 함께 짐을 정리하던 어머니가 서랍에 연필이 있다는 걸 봤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버려지더라도 버렸다는 사실 자체, 그러니까 연필의 ‘존재’는 알고 있게 됩니다.
홀로 남은 불쌍한 사람 이야기도 살짝 비틀어 다른 주인공을 넣어봅시다. 지구에 혼자가 아닌 셋이 살아남게 되었다고 하지요. 불행하게도 이전 이야기에서 등장했던 그 사람은 혼자가 아닌데도 외로워 미쳐버리고 맙니다. 다른 두 명에게 ‘내가 생존자를 찾아왔어!’라며 자신의 상상 친구를 의기양양하게 소개하네요. 다른 둘은 그가 가리키는 자리를 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며 ‘쟤가 결국 미쳐버리고 말았군. 이봐, 그 자리엔 아무도 없다고!’ 하며 안타까워합니다.
그가 홀로 생존한 지구에선 상상 친구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박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정말 존재하는지 아닌지 진실된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마침내 작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인식’ 그 자체도 중요하긴 하지만 ’아, 나 혼자만이 아닌 누군가가 함께 똑같이 봐줘야만 그제서야 정말 있다고 말할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지요. 그리고 점차 스스로 말을 다듬어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상호 교차 인식이 있을 때, 비로소 존재한다.
얼핏 보면 제대로 된 철학은커녕 ‘존재론’이라는 단어도 모르던 소년이 굉장한 답을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철학과를 가야 하나 싶고, 마치 대한민국의 21세기 하이데거가 된 것 같은 기분이군요. 하지만 세상에 허점 없는 완벽한 주장은 드뭅니다. 시간이 지나며 여러 현상을 바라보다 보니, 이 결론에도 마찬가지로 점차 여러 의문이 들기 시작한 거지요. 어떤 의문들이 생겼을지 다음 이야기에서 함께 살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