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키지 않은 죄와 선

by 도화민

지난 이야기에서 우리는 ‘상호 교차 인식 기반 존재론’의 한계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존재 조건의 핵심이 ‘인식’이었는데, 똑같은 것을 똑같이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어 완벽하지 않다는 말이었지요. 이런 사실에서 비롯된 ‘합의된 혼돈’을 정의하고, 모순을 인정하면서도 더 깊게 탐구해 보기로 한 것이 이전까지의 이야기였습니다.


소년의 작은 이론에서 핵심이었던 ‘인식’의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상호 교차 인식 기반 존재론’ 그 자체의 문제는 없을까요? 더 성숙한 답을 찾고자 어린 날의 저는 스스로에게 끝없는 반박을 던지며 예전 의문에 다시 도달했습니다.


혼자서만 인식하면 그건 온전한 존재가 아닌가?


혼자만의 인식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불쌍한 사람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를 떠올려 철학을 만들었지만, ‘애초에 그게 맞는 의문이었는가’ 하는 생각으로 다시 돌아왔네요. 혼자만의 인식은 분명 잘못되었을 수 있고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존재하지 않음을 단정 지을만한 근거가 되나요? 예리하고 비판적인 독자님들은 6화까지 함께하는 동안 제 이론이 위험한 철학이라며 아래와 같이 비판점을 찾았을 것입니다.


남들이 같이 봐줘야 존재한다는 말은 곧, 남들 몰래 하면 없는 것이 된다는 말인가!


맞습니다. 세상에는 분명 나 혼자만이 인식하는 일도 있고, 그걸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갖느냐는 말과, 실제로 존재하느냐는 조금 다른 결이니까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어린 날의 저는 상당히 위험한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우와, 들키지 않으면 없는 거니까 범죄도 몰래 저지르면 되나?’, 혹은 ‘착한 일을 해도 사람들이 모르면 없는 거니까 가식적으로 살아야 하나?’와 같은 생각 말이지요. 그러나 저는 제 철학이 저런 말을 정당화하는 데에 사용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민 끝에 찾은 답을 아래 이야기에서 함께 살펴볼까요?



여러분은 들키지 않는다는 확실한 전제가 있다면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있으신가요? 제 철학에 따르면 남들이 인식하지 못한 몰래 저지른 범죄는 괜찮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모르면,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닌가요?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서 범죄는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반드시 상황을 인식한다는 뜻입니다. 살인과 강도와 같은 강력범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칼에 찔리는 사람은 자신이 찔린다는 걸 인식할 것이고, 강도 또한 피해자가 물건을 빼앗기며 그것을 인식할 것입니다. 상호 교차 인식을 한 것이지요. 이는 명백히 ‘존재’하게 된 죄악입니다.


그럼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 작은 죄는 어떨까요? 예를 들어, 아무도 없고 CCTV도 없는 길가에 작은 쓰레기를 하나 버리는 일처럼 말이지요. 흠, 내가 버렸다는 사실을 아무도 보지 못했으니 이를 존재한다고 하기엔 어려워 보입니다. 아무도 보지 못했으니, 나만 모른 척하면 그만인 것 아닌가요? 그러나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중요하게 이야기한 ‘인식’을 의식적 인식에만 한정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사고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무의식도 있지요. 인식 또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가령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누군가 지나가다 보고 의식적으로 ‘누가 쓰레기를 버렸네, 아이 더러워.’ 하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저 더러운 길가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으니까요.


반대로 들키지 않은 선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볼까요? 여러분이 만약 갑부여서 굉장한 돈을 갖고 있는데, 도움이 필요한 곳에 몰래 거액을 기부했다고 해 봅시다. 나 말고는 세상의 아무도 내가 그런 도움을 건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그게 없는 일이 되나요? 내가 했다는 사실은 세상이 모르더라도, 분명히 그 행위 자체는 누군가에게 전달되며 실제로 도움을 받는 사람이 생깁니다. 분명하게 인식되지 않더라도, 영향을 끼침으로써 무의식적으로나마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었군요. 거액의 기부가 아니더라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쓰레기를 줍거나, 대중교통에서 옆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자세를 살짝 움츠리는 그 모든 작은 일은 누군가를 덜 불편하게 하는 식으로나마 작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선을 상호 인식하며, 마침내 세상에 아름다움이 ‘존재’하게 됩니다.



인식이라는 개념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누가 했는지, 그리고 그걸 해서 어떤 결과가 생겼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생각을 해야만 인식이라고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렇습니다. 소년은 이제 인식이 무의식적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고, 나의 모든 행동은 그렇게 어떻게든 남에게 전달되며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떠오르는군요.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지구 어딘가에서 태풍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는 용어로, 어떤 작은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존재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존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생각 끝에 소년은 이 세상 모든 것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마침내 존재한다는 아름다운 결론에 압도됩니다. 존재론적 겸허함을 느끼는 순간이군요. 우리는 지금까지 나의 능력, 나의 성과, 나아가 나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부르짖고 증명하기 위해 싸우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요. 그러나 존재한다는 것은 그런 사투가 아니라, 연결된 이 세상 모든 존재와 교감하며 존중하는 아름다운 일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결론은 철학적으로 완벽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모든 ‘존재’에 겸허한 마음으로 행동에 책임감을 가지기엔 충분한 철학입니다. 단적으로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되어 주니까요. 우리 자신, 그리고 그 모두의 행동은 온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조금씩 바꾸며, 그렇게 존재함으로써 세상을 이룹니다.


조용히 물결치는 작은 깨달음 속에서, 마지막으로 작은 질문을 하나 드리며 오늘의 끝맺음을 하려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떻게 존재하고 계신가요?

작은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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