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본격적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고 나서 경감된 통증이 적은 것에 반해 나는 엄청난 부작용들을 감내해내야만 했다. 부작용 중 당시 굉장히 당황스러웠던 건 ‘배뇨장애'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배뇨장애를 겪게 되었는데, 요의가 생겨 화장실에 가도 도저히 나올 생각이 없던 소변에 적잖이 당황하곤 했다.
처음엔 배뇨장애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해 봤지만 생각해 볼 수 있는 원인으로는 약 밖에 없었다. 새롭게 추가된 약이라고는 옥시코돈과 펜타닐뿐. 두 약제의 부작용을 찾아보니 이러했다.
두통, 오심/구토, 어지럼증, 변비, 의존, 위장관 장애, 호흡 억제, 수면장애, 배뇨장애 ㆍㆍㆍ
결국엔 내게 찾아온 배뇨장애 또한 예상했던 대로 약 부작용이었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마약성 진통제’ 때문이었다. 20대에 배뇨장애라니 너무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 즉시 붙이고 있던 펜타닐 패취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몸에서 떼어냈다. 그리고 PRN으로 처방이 났던 아이알코돈(옥시코돈) 또한 중단했다.
사실 펜타닐 패취는 제거를 하더라도 하루정도 몸에 약효가 남아있다. 그 사실을 간과한 나는 떼어내어도 나쁘지 않은 몸 상태에 경구약으로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약효가 다 빠져나간 후 마주한 온전한 내 몸의 통증은 더욱더 거세져 내 사지를 찢어 죽이려 달려들었다. 나는 루틴약으로 받은 진통제였던 쎄레콕시브와 근이완제를 먹으며 패취 없이 조금 더 견뎌보려 했지만 온몸이 불타고 썰리는 통증 덕에 이틀 만에 다시 패취와 상봉했다. 대신 원래 사용하던 패취의 용량이 12 mcg이라면 이번에는 반을 잘라 6 mcg으로 용량을 줄여 붙여보기로 했다. 하지만 한 번 패취의 진통 효과를 본 탓인지 내 몸은 6 mcg에는 끄떡도 하지 않았고 나는 며칠 만에 다시 용량을 12 mcg으로 용량을 늘리게 되었다.
"먹는 진통제든 패취든 줄여나가서 결국 끊긴 해야 해요."
항상 내가 듣던 말이다. 평생을 이렇게 약에 의존해 살 순 없기에 나는 언젠가는 약을 줄여나가야만 했던 상황에 놓여있었다.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통증 환우 카페에서 온갖 정보를 쓸어 담기 시작했다. ‘*케타민’이라는 단어가 내 눈에 들어왔다. 케타민은 마취제의 일종인데 그 케타민을 만성 통증 환자의 몸에 주입함으로써 일시적으로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것이었다. 일시적인 효과일지라도 당시의 나는 하루만, 아니 반나절 만이라도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만성통증 환자였기에 당장이라도 그 치료를 해보고 싶었다. 다음 외래 때 나는 교수님께 케타민 치료에 대해 조심스레 언급을 했다.
“증상이 심한 환자들에게 쓰이는 치료 방법이긴 한데, 지금 증상이 많이 심하긴 하니까 해볼 수 있긴 하죠. 그 치료해보고 싶어요?”
그 질문을 받자마자 내 머릿속은 갑작스레 복잡해졌다. '만약 이 치료를 했을 때 효과가 없다면 또다시 나는 좌절하게 되겠지.'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고 병원마다 치료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다니던 병원의 케타민 치료는 당일 입원을 해서 경과를 봐야 했는데 당시의 나는 개강을 앞둔 대학생으로서 시간적 여유 또한 충분하지 않았기에 지금 당장은 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교수님은 이에 혹시라도 증상완화를 위해 해보고 싶은 치료가 있다면 언제든 말하라고 해주셨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나는 섬유근육통 환자 중에서도 통증이 특히나 심한 환자에 속했다. 나는 이젠 비마약성 진통제로 통증을 누르기에는 통증 수치가 굉장히 높아져있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새로운 증상까지 더해졌다. 약물치료를 위해 먹는 약들마저 족족 토해내기 바쁜 내 몸의 상황에 약 또한 먹을 수 없었고 당장에 할 수 있는 게 진통제 주사와 패취를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패취를 붙인다고 통증이 나아졌다면 그래도 나았을까. 나는 패취를 붙이고 있음에도 등에 칼이 여러 개 꽂힌 것과 같은 통증을 느껴야만 했다. 내 패취는 12에서 24(12 mcg*2)로 용량이 늘어났지만 통증은 여전했다. 하지만 이 이상으로는 패취 용량을 늘릴 수 없었기에 정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나는 다시 마취통증의학과에 다녀올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그날은 개강날이었다. 친구들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강의를 듣고 있을 시간에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마취통증의학과에 가게 되었고 교수님의 목소리 대신 마취통증의학과 환자들의 곡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교수님께서는 어찌 되었든 지금까지 사용을 해본 약이 많기 때문에 약에 대해서는 일절 터치를 하지 않을 거라고 하셨고 케타민 치료를 바로 진행하자고 하셨다. 어쩌면 내게는 마지막 선택지 같았던 케타민치료를 하게 된 것이었다. 라인을 잡아주시러 들어오신 간호사선생님께서는 “오늘 개강 아니에요? 개강인데 병원에 있어서 어떻게 해…”라는 말을 하며 멋쩍은 웃음을 내뱉는 내 손을 꼭 잡아주고 나가셨는데, 나는 그 순간부터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3시간에 걸쳐 들어가는 약물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 몸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는 것만 같았고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느낌, 최악이다. 곧이어 두통과 오심이 시작되었고 간호사 선생님께 증상을 말씀을 드려 약물 주입 속도를 늦춰보았지만 치료가 끝날 때까지 그 증상은 가시지 않았다. ‘다시는 안 하고 싶다’라는 짧은 치료 후기를 남긴 후 귀가한 나는 3주 후 잡힌 외래에서 또다시 케타민 치료를 하게 되었다.
“케타민 치료를 어느 정도 더 해봤으면 좋겠어요. 저번에 하고 많이 안 좋았으니까 오늘은 저번 치료의 용량 절반으로 해볼게요.”
용량이 어찌 되었든 한 번 좋지 않은 기억이 심어진 케타민 치료를 다시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겐 심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안 그래도 괴로운데 이 치료를 함으로써 더욱더 괴로워지는 것만 같았고 이 모든 상황이 벅찼다. 결국 나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케타민이 들어가는 내내 숨죽여 울었다.
모두가 나를 위해 이렇게나 노력을 해주는 만큼 내 몸도 따라줬다면 벌써 낫고도 남았을 텐데, 내 몸은 왜 이모양이어서 모두에게 항상 실망감만을 안겨주는 걸까.
그리고 나는 경과 관찰을 위해 간 다음 외래에서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이런 약들도 더 이상 먹기 싫고 남들처럼 평범한 일상 보내고 싶다.
병원비로 지출하지 않고 내 또래들처럼 좋아하는 거 하는데 지출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아프다고 말해봤자 이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결국 내가 이 모든 걸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2021년 3월 19일 일기 中>
*케타민(ketamine):전신 마취 유도와 유지, 통증의 경감을 위하여 사용하는 해리성 전신마취제로써 근육주사나 정맥주사를 통해 투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