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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Aug 22. 2024

마약성 진통제

통증의학과(2)

*전 글과 겹치는 시기였기에 내용 또한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퇴원한 지 24시간이 채 되지 않았을 시점부터 나는 더욱더 몸 통증이 심해졌다.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이대로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교수님의 권고를 무시하고 트라마돌을 연신 삼켰다. 그렇게 진통제를 많이 먹어도 나는 온전한 내 일상을 보내기 어려웠다.


외래까지는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내가 버틸 수 있는 한계점은 여기가 끝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집 근처의 통증의학과 의원을 추천받아 방문을 하게 되었다. 내 상태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만 했지만 당장 너무 아파 죽을 것만 같았는데 그게 뭐 대수인가. 원장님께서는 “섬유근육통을 진단 받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텐데. 그동안 고생 많이 했겠네요.”라는 말을 건네셨다. 그 말에 또다시 내가 겪어온 모든 과정들이 주마등 스치듯이 지나가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원장님께서는 내 처방약들을 손봐주셨고 내게 부가적으로 더 해볼 수 있는 주사치료와 도수치료를 권해주셨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사실 아픈 그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 맞는 말이겠지.


나는 일주일에 2~3회씩 도수치료를 꾸준히 했다. 오랜 기간 치료사 생활을 하며 여러 환자들을 봐오신 치료사 선생님께서는 초반에 내 치료에 자신감이 넘치셨지만, 나아지지 않는 나를 마주할 때마다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셨다. 보통 이 정도 치료를 하면 다른 환자들은 증상이 일시적인 현상이더라도 완화되곤 하는데 나는 올 때마다 현상유지는커녕 증상이 더 심해져서 선생님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나는 추가적으로 통증에 좋다는 수액까지 내 혈관에 수도 없이 흘려보내야만 했는데, 계속해서 라인을 잡다 보니 후에는 계속해서 얇고 터지는 혈관에 내 모든 팔에 멍을 달고 살기 일쑤였다.




더디기만 한 치료 경과에 눈물을 쏟으며 진료를 본 적이 있다. 그런 내게 원장님께서는 약한 마약성진통제라고 설명을 해주시며 타코펜캡슐이라는 약을 처방해 주셨다.

 

“사실 지금껏 복용하고 있던 트라마돌 역시 외국에서는 마약류로 분류가 되고 있는 약이긴 한데 트라마돌이 듣지 않으니까 다른 약을 써볼까 해요. 사실 효과면에 있어서는 트라마돌과 거의 차이가 없을 것 같긴 해요.”  


처방전을 발급받아 약국에 제출하고 건네받은 약에는 “마약”이라는 두 글자가 빨간 글씨로 적혀있었다. 나는 ‘마약’이라는 단어가 너무 두려워 쉽게 입에 넣을 수 없었다. 몇 번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 약봉투에 진통제를 다시 밀어 넣었다. 하지만 통증이 나를 지배하는 날들 앞에 나는 백기를 들고 물과 함께 삼켜내었다. 내가 너무 큰 효과를 기대한 탓이었던 걸까.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었다.



이후 약이 듣긴커녕 통증 수치가 높아지는 현상을 확인한 원장님은 더 강한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코돈 성분의 오코돈정 5mg과 부프레노르핀 성분의 노스판패취 5ug을 처방해 주셨다. (노스판패취는 만성통증이 있는 환자들이 계속해서 진통제를 복용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움을 덜어주는 경피 부착형 패취다. 잘 알려진 펜타닐패취와는 다르게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고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가 되어있다.) 하지만 그 역시 내 통증을 잡아주지 못했다. 더욱더 심화된 작열감으로 인해 내 손과 등은 타서 지금 당장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차라리 그렇게 해서 아픈 부분이 사라진다면 오히려 나을 것 같다는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병원 그만 가고 싶다. 통증 그만 느끼고 싶다.
24시간 만이라도 통증 없이 지내보고 싶다.
<-2021년 1월 30일 일기 中>


이틀을 꼬박 눈물로 보낸 후 간 의원에서 원장님께서는 근전도검사, 신경전도검사를 다시 처방 내주셨고 그 결과 언제나처럼 이상은 없었다. 원장님께서는 잠시 고민을 하시더니  패취를 펜타닐 제제로 바꾸어주셨다. 몇 년에 걸친 투병 생활을 하며 약에 대해 잘 알게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제일 작은 용량의 노스판 패취에서 바로 펜타닐 패취로 넘어갔던 상황이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그게 당시의 나를 어떻게든 일상으로 돌려놓기 위한 원장님의 최선이었던 것 같다. 물론 나의 경우에도 마약에 대해 무지하기도 했고 일상생활을 되찾기 위해서는 통증을 잡는 것이 우선적이었기 때문에 원장님이 주신 패취를 바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내 앞날이 이 작고 얇은 패취에 하루하루가 달려있게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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